한방으로 해결하고픈 유혹
취업 준비를 위해서 서울에 올라온 나는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위장병에 걸렸고, 장시간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다 보니 허리도 아팠다. 어느 날에는 머리를 자르다가 500원 동전만 한 탈모가 생긴 것도 알았다. 그리고 탈모보단 경증인 두통이나 스트레스로 올라오는 뾰루지까지 정말 총체적 질병 덩어리였다.
그러던 가을 어느 날. 학원을 가려고 고시원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허리 전체로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일어나지 못했다. 20대 남자가 외부적 충격도 아니고 갑자기 일어나지 못하니 난감했다. 억지로 계단 난간을 붙잡고 학원을 갔다. 물론 거의 앉아서 있다가 돌아오는 수준이었지만, 점심 이후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한테 얻은 정보로 한의원을 갔다.
한의원은 딱히 어릴 때 한약을 지어먹기 위해서 어머니 손을 잡고 갔던 기억만 있었다. 그것도 한약재 특유의 냄새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쓴 약을 먹는 것을 알고 주사처럼 강하게 거부했던 좋지 않은 추억뿐이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니 내 발로 찾아갔다.
내가 갔던 한의원은 중년이 조금 넘어가는 여자 원장님이 계셨는데, 침대도 딱 4개뿐인 곳이라서 대기 시간이 좀 길었다. 점심도 못 먹고 간 터라 현미 녹차를 두어 잔 마시며 기다렸다. 차례가 되어서 1번 침대에서 병원 직원분 지시에 상의를 탈의하고 누웠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의만 탈의하고 누워있으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몸을 움츠러들었다. 들어온 원장님이 나를 보더니 바지도 벗으라고 하셨다.
“바지도요?”
그러자 웃으며 한마디 하신다.
“병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겁니다.”
트렁크 속옷만 입고 이모뻘 되는 원장님 앞에 누웠다. 그리고 그분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일단 허리가 너무 아파서 간 거니 엎드려서 허리가 아픈 부위를 말씀드렸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손가락을 쿡쿡 찌르는데, 나는 무슨 무협 영화의 혈 자리를 짚어서 상대를 제압하는 은둔 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허리만이 아니라 종아리와 발바닥까지 침을 놓는데, 침으로 마비당한 물고기처럼 엎드려 있었다.
“혹시 어디 다른 데는 불편한 데 없어요?”
‘혹시?’
그러자 평소에 아팠던 위장과 원형탈모, 두통을 말씀드리니, 바로 머리에 침이 들어왔다. 원형탈모는 스트레스가 문제라면서 고민이 많으냐는 질문과 함께 마음을 비우라고 하셨지만, 이미 나는 맞은 침이 몇 개일지 머릿속으로 계산 중이었다. 그리고 허리에 부황을 하고 나서 끝났으려니 하고 옷을 찾는데, 다시 뒤집으란다. 다시금 침을 얼굴부터 발등까지 맞고는 마비된 상태로 누워있었다. 손에 침을 맞고 있어서 핸드폰도 보지 못하고 멍하니 천장을 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고역이다. 부항을 하는 시점에 원장님이 명치를 다시금 손가락으로 누르는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팠다.
“속에 화가 많은 사람은 여기가 아파요.”
내가 했던 부황은 사혈 부항이었는데, 그곳에 바늘로 톡톡톡 건드리고 부항을 하니 피가 쭉쭉 나왔다. 많은 양의 피가 나와서 당황을 하긴 했지만, 저렇게 하고 나면 내 화가 쏟아지는 것 같아서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치료가 끝나고 옷을 챙겨 입고 나오면서 가슴팍을 보니 꼭 아이언맨처럼 동그란 자국이 남았다.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부항을 하니 나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슈퍼 히어로가 된 것처럼 묘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 후로 한의원 치료는 한동안 받았다. 그 덕분인지 치료받았던 질병은 차츰 차도를 보였다. 두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은 가야 했던 병원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부담은 되었지만, 기대감이 있었다. 오히려 병원을 가서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고 여러 병원을 갈 수 없는 처지에서 올인원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기대감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유독 한의원이 체질상 맞는 것인지. 아니면 애들 장난처럼 가슴팍의 아이언맨 자국이 건강을 위한 부적이었는지. 의심은 하지만 합당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