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도 따뜻한 물이 좋다

주변에 섬세한 배려가 있다면

by 이춘노

면사무소 집사 한 명이 물을 챙겨줬다. 물그릇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을 보니 뜨신 물이다. 그렇게 부르지도 않았는데, 물그릇 놓는 소리에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할미 고양이부터 혓바닥을 낼름 거리면서 뜨겁지도 않은 온수를 흡입하는 모습에서 젠틀한 집사의 섬세함을 느꼈다. 그렇게 순서를 지키면서도 따뜻함을 즐기는 길냥이를 보면서 나를 생각했다.


나도 한때는 길냥이 같은 생활을 했었다.


나이 20대 중반 이후에는 어느 친척집이나 친구 집이나 그것도 아니면 반지하 고시원 방에서 한 달 한 달을 걱정하며 생활했다. 그렇다고 직장이 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벽을 하나 무너트리고 마주한 현살에서는 더 높은 벽이 존재했다. 그러면서 체력은 고갈되어서 이제는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더 높은 벽을 바라보면서 좌절을 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고양이에게 물을 준다고 해서 저 아이들은 배가 부르지 않다.


길냥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알고 있다. 저 녀석들은 절대 배부르지 않다. 항상 허기진 얼굴로 돌아다니며, 아무리 세수를 한다고 해도 배는 채워지진 않는다. 그래도 고양이들은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다니면서 비참하게 살더라도 인간에게는 도도한 모습 그대로이다. 저것이 고양이로써의 자존심일까? 아니면 연기일까? 짐승에게 연기는 없을 테니 태생의 자존심일 것이다.


그에 반면에 나는 인간이기에 연기를 한다. 집을 나서면서 다시금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태연한 척 연기를 한다. 인사하고 싶지 않지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혼자 있고 싶지만, 친한 척 말을 걸고 식사했다. 하나도 아쉽지 않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사람도 보냈다. 그리고 세상 불행하지만, 가장 행복한 듯 말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니까.


하루가 후회되지 않을 만큼만 열심히 살다가 내일 당장이라도 죽고 싶습니다.


상담을 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내일 당장 죽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날 불태웠으면 좋겠다. 오늘만 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오늘까지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은 적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도 참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과연 나에게도 배부른 날이 오긴 옵니까?
나에게 따뜻함은 있기나 합니까?


아마도 우리 면사무소 고양이들처럼 수많은 길냥이 인생들은 기대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저렇게 간혹 생기는 따뜻한 배려에 행복해한다. 그런 의미로 살아가고, 다시금 배고픔에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아닌 척 연기를 하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겠지.

배고픈 고양이나 허무한 집사나 비슷한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나약한 생물이기에 행복한 날을 꿈꾼다. 설령 그러한 날이 오지 않더라도 누구를 탓하긴 어렵지만, 사는 동안은 나도 그 배려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렇다고 해도 나로 인해서 또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물론 지금은 고양이뿐이지만...

내가 생각한대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으니, 내일은 오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