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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休)라면 먹어봤니?

고속도로에서만 먹어 볼 수 있는 합리적 마지노선

by 이춘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휴게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있다. 바로 휴(休) 라면이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건더기 수프를 추가로 넣어 진한 국물 맛을 낸 것이 특징이라고 선전하는데, 먹어보면 신라면과 안성탕면이 판치는 분식 세계에서 새로운 시도였다.

아마도 도로공사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의 맛있는 휴게소 라면'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큼직한 건더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자체적인 레시피라고 하는데, 처음 맛보고 라면에서는 까다로운 내 입맛을 확실히 끌었다. 이른바 밀덕의 대중적인 맛은 보장한다.

아마 개발의 포인트는 ‘합리적인 가격’ 일 것이다. 보통의 라면은 기본은 한다. 오히려 라면의 다양한 레시피는 휴게소마다 다르다. 아무리 통일된 조리법이 있어도 해주시는 분의 기분과 실력도 다르니까. 그런데 휴라면은 휴게소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매력이다. 그리고 이름처럼 휴식할 수 있는 주머니도 마음도 편안하니까.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휴식만 같은 곳은 아니다. 어쩌다 타야 하는 고속도로에서 휴게소 방문이 이제는 부담스럽다. 입구부터 가파르게 오르는 휘발유 가격이 그러하고, 만 원 한 장으로 내 식사를 배부르게 먹기 버겁다는 생각. 주문 메뉴 기계 앞에서도 가격 때문에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이유다. 과거엔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을 구석진 자판기 5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찾게 되고, 밥 종류나 독특한 식단은 일단 패스한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 ‘휴(休)라면’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휴게소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성의 공간이었다. 단순히 화장실만 찾아가는 배설의 공간이 아니라, 먹거리의 낭만이 존재했던 고속도로의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이제는 메뉴보다는 가격을 먼저 보게 되었다. 즐거워야 할 여행길이 참 발걸음도 참 무겁다.

그래도 다행이다.


휴(休)...

라면이 있어서 말이다. 이 라면이 없었다면, 거기에 공깃밥도 없었다면, 나는 배설만 하고 집으로 달리기만 했을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휴게소에서 먹방을 찍어보나 했는데, 주머니 사정으로 자체 격리를 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런데도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세상에도 합리적인 마지노선 식사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서 지켜지는 마지노선이라는 것은 존재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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