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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에는 뭘 드시나요?

제주 <옥만이네> 1인 해물 갈비찜도 팔더라

by 이춘노

덥다. 요즘처럼 습하면서 덥기도 쉽지 않다. 뭔가 어긋난 날씨 예보처럼 이번 여름은 유독 짜증스럽다. 어떻게 조금만 걸어도 마스크에 땀이 이토록 묻어 나올까. 게다가 나 같은 뚠뚠이는 더운 수준을 넘어서 내리지도 않는 비가 상의가 땀으로 홀딱 스며들었다.

과거에 에어컨이 없는 세상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외출만 하고 나오면 기진맥진이다.


‘역시 몸이 허해졌나?’


그렇게 달력을 보니 초복(初伏)이다. 조상님들은 어찌 아셨는지. 후손들이 몸이 허할 시기를 딱 세 번이나 정해서 표시해 두셨다. 그 첫 고비가 초복(初伏)인데, 나도 요즘은 몸으로 그것을 느끼는 것 같다.

어릴 적에는 급식으로 복날을 느꼈다. 가끔 나오는 조그마한 닭백숙이 있으면 요리조리 뜯어먹었다. 그리고 직업을 갖기 시작하면서는 상사들이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게다가 사회복지 업무를 보면서 마을 경로당에서는 복달임이라는 행사를 꼭 하셨고, 담당자를 초대해서 아니 갈 수 없어서 삼계탕을 챙겨 먹었던 것 같다. 아니면 동에서나 센터 단위로 어르신을 초대하는 복달임 행사도 보조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스로 내 몸을 챙기기 위해서 복날에 뭔가를 챙겨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기억해보면 거의 없다. 삼계탕이 맛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내 돈 주고 사 먹기는 참 머시기(?)한 상황.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사주거나 남이 챙겨주는 것만 먹어왔던 것 같다.

아마 여행을 가서라면 지갑을 열 수 있을까? 초복을 맞이하면서 잠시 제주를 찾았던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에 해물 라면도 먹었고, 고기 국수도 먹어봤다. 혼자 숙소에서 횟감에 소주도 먹었지만, 좀 더 맛있는 것이 없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맛있는 것은 2인분 이상이어야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차라리 2인분을 시켜서 먹어볼까.’,‘너무 뚠뚠이로 보이려나?’ 이러한 고민에 빠질 무렵에 좋은 정보를 찾게 되었다. 1인 메뉴가 있었다. 그것도 해물 갈비찜. 딱 보기에도 뚝배기에 나오는 푸짐한 메뉴인데, 1인분이란다. 나와 같은 혼밥을 즐길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꼭 찾아가야지.


제주를 찾다 보면 애월이나 성산이나 서귀포 정도는 여행하겠지만, 한림읍은 조금 낯설다. 그래도 오로지 먹기 위해서 찾아온 곳이다. 일부러 한산한 시간대에 와서 손님은 적었지만, 역시나 혼밥 손님은 내가 유일했다.

갈비찜이라는 것과 각종 해물이 덩어리로 있다 보니 먹기도 푸짐하고, 남자인 내가 먹기에도 배가 불렀다. 오로지 가위와 집게와 먹는 입과 씹는 소리와 바쁜 젓가락 숟가락이 존재하는 테이블이었다. 먹기만 해도 원기 충전할 것 같은 메뉴를 그릇까지 다 비우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를 위한 1인분 보양식은 이게 유일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일까?


살다 보면, 먹고사는 것이 이유라고 하면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거나 빵과 우유로 한 끼를 해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급한 일이 있는데, ‘먹는 것을 챙기는 것이 뭣이 중한디.’라고 살고 있지 않나?

내가 그랬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폐기된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공시 공부를 하면서는 점심시간이 아까워서 김밥 한 줄이나 주먹밥을 먹으며 책을 봤다. 사실 그때는 돈이 없었지만, 취업을 하고는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더 마음처럼 식도락도 빈곤해진 것은 왜 그랬을까?


주변에서 어른들이 말하는 ‘밥은 먹었냐?’라는 말이 귀찮기는 해도, 새삼 돌아볼 날이 복날은 아닐지. 좀 생각해본다. 분명 항상 맛난 것만 먹고살 수는 없지만, 조상님이 차려준 밥상을 챙겨 먹는 것도 오늘만큼은 사치가 아니기에 맛난 것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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