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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고 육쌈 냉면을 먹어 봤니?

전주 객사에서 영화를 보고

by 이춘노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나는 땀을 줄줄 흘리는 사우나가 있는 목욕탕에 들어가고 싶은 것. 또 찜질방에서 계란 라면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눕고 싶은 것과 영화관에 가서 팝콘을 먹는 것이다.


사실 3년 전에는 전주로 가는 길이 나에게는 소소한 삶의 일상이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영화관에 들어가 캐러멜 팝콘에 콜라를 쭉쭉 마셨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위해서 주말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냥 시원한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전부였다. 그리고 알라딘 서점과 교보 문고를 들러서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고는 시간이 되면 냉면을 먹었다.


냉면과 고기를 같이 주는 메뉴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수험생에게는 최적의 코스였기에 서울에서도 즐겨 먹었던 체인점 식당이었다. 그것이 나의 힐링 일정에 겹치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냉큼 코스에 넣어서 몇 년을 그렇게 살았다.

이곳을 즐겨 먹는 분들은 알겠지만, 여기는 온육수와 냉육수를 같이 먹을 수 있다. 일단 물컵에 물을 하나 담고, 온수 컵에는 뜨끈한 육수를 담아서 의자에 앉아서 메뉴가 나올 때까지 후후 불어가면서 육수로 입맛의 시동을 건다. 그리고 메뉴가 나오면 무조건 비빔냉면을 시켰다. 적당히 매운 소스를 열심히 저어가면서 비벼 놓으면, 붉게 물든 면발이 잘 스며든 상태로 준비 완료이다.

이제는 먹기만 하면 되는데, 먹는 데는 몇 분 안 걸린다. 그래도 맛을 음미하겠다고, 불맛 나는 고기에 면을 더해서 한 입 오물오물 씹는다. 역시나 냉면은 고기와 먹을 때 더 맛나다. 아마도 고깃집 후식 냉면이 그리 맛있는 이유도 이것과 같겠지. 그렇게 다 먹고 나면 주전자에 냉육수를 이미 다 마신 온육수 컵에 살짝 따라서 마시며 입가심을 한다.

역시나 정말 집에서는 따라 하기 힘든 식당의 맛이다.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주는 위안을 주던 의식과 같던 일상이 단절된 지도 2년이 넘었다.

그러던 내가 몇 년 만에 영화를 보기 위해서 전주를 향했다. 이른바 ‘마블리’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에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범죄도시 2>였다. 보통 흥행한 전편보다도 잘 나가는 후속 편은 없다는데, 보는 내내 몸이 움찔움찔했다. 몸치인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걸 보면 격투씬은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범죄도시라는 영화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악역이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1편에서의 윤계상의 장첸이나 2편에서의 손석구의 강해상 역은 악역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배우가 소화해낸 찐 빌런이라서 더 몰입도가 좋았던 것 같다. 만약에 너무 강력한 형사 마석도만으로 모든 것이 쉽게 풀리는 뻔한 영화라면 영화관에서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정의는 이긴다는 결말은 알고 보는 영화지만, 그건 영화라서 용서한다.


다행히 나의 몇 년 만의 힐링 코스는 기분 좋게 시작되었고, 그간 쌓아둔 책도 몽땅 알라딘 서점에 팔아서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그렇게 이어진 냉면이었다. 슬슬 감격을 해도 될 상황 아닐지. 잃어버렸던 소중한 일상이 회복되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느낀 하루다. 그렇게 하루 코스를 다 돌아보니 세상에는 별거 아닌 행동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애마가 별 탈 없이 굴러가기에 전주에 올 수 있었고, 마침 영화가 나와서 볼 수 있었고, 코로나 시국에도 잘 견딘 냉면집도 그대로라서 먹어 볼 수 있었다. 또 아무 사고 없이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기에 다시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하루라는 것을 온몸 구석구석 만끽할 수 있음에 마지막으로 새삼 고맙다는 말을 소심하게나마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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