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참치김치찌개
쌀이 없다.
남들에게는 쌀을 나눠주기 위해서 10kg짜리 쌀 포대도 200개씩 나르고 했는데, 정작 내가 쌀이 없다. 작년은 감사하게 쌀을 주신 분이 계셔서 고맙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꾸역꾸역 챙겨 먹었는데, 똑 떨어졌다. 새삼 면 중독자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런 날은 수제비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그건 또 싫다. 물가도 올라서 배달을 시키기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밥도 하기 싫다. 그럼 굶어야지 싶지만, 배는 고프다. 아무리 혼자 먹고 싶은 사람도 좀 제대로 먹고 싶다. 가끔은 집밥이 그리운데, 혼자서는 그것도 부담스럽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했나?’ 싶다.
걷는다.
집 근처에 있는 순대국밥집도 지나고, 횡단보도를 서너 개 건너면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그리고 내 한 끼를 책임 질 김밥천국도 있다.
내가 최근에 글을 쓰면서,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무렵에 야식으로 밥을 때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고, 기껏 기차역 근처에서나 국수나 먹을 수 있었다.'는 건. 정정한다. 왜냐면 대도시쯤에는 이른 아침이나 혹은 24시간을 영업하던 김밥천국 같은 분식점이 있었다. 물론 그곳에 주 메뉴는 김밥 한 줄과 계란 라면이었다. 그것 말고도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수중에 돈으로 딱 나에게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서는 어쩐지 밥이 당겼다. 라면도 이제는 고급 음식이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제일 좋았다. 어떻게 먹더라도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든든해서 집밥 같은 느낌과 사 먹는 기분의 중간쯤 되는 친근한 장소였다.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참치 김치찌개를 입김을 불어가며 한 숟가락 떠먹는다. 속이 풀린다. 이제 정령 MSG 맛인가? 내 입맛은 그러고 보면 좋게 말해서 대중적이고, 솔직히 싸다. 공깃밥이라는 정말 공기 같은 밥을 숟가락에 떠먹고, 이내 말아먹는다. 씹히는 김치, 떡이나 결국은 참치 기름의 부드러운 맛에 더 빛나는 것이지만, 막상 참치는 별로 안 보인다. 아마도 풀어진 살코기들이 국물에 퍼진 탓이겠지?
맛있게 먹고서 휴지를 찾다가 7월 1일 자로 가격이 오른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주유소도 세탁소도 올랐고, 가는 곳마다 가격 변동을 알리는 문구를 봤다. 그래도 6월 30일까지 버티시는 사장님의 마음이 감사하다. 그래도 슬픈 이유는 뭘까? 그냥 음식점에 가격이 하나 오른 것뿐인데. 김밥천국마저 오른다니 세상 물가에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 같다. 아직 내가 좋아하는 라면이나 수제비의 가격은 오르지 않아서 덜 체감했지만, 과거에 알코올 중독 수급자분이 오셔서 술값이 올라서 짜증 난다며 난동을 부리던 것이 생각났다. 그분도 그런 마음이었던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 멀어지는 기분. 물론 그런 상황에서는 멀어지는 것이 맞지만, 나도 살 때문도 아니고 돈이 모자라서 두 번 중에 한 번만 보는 거라면 서운하기보다는 좀 화날지도 모르겠다.
잘 먹고, 입도 닦고, 물도 마시고는 계산하고 나오면서 새삼 미안한 마음에 현금으로 결제를 했다. 서로 힘든 사람에게 그것이 그나마 감사하다는 표현 같아서 말없이 거스름돈을 받고 나왔다. 7월 1일이 넘고서는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맛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