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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양 먹방을 보다가 배고픔을 추억하다

사당역 차돌박이 라면 맛집이 내 청춘을 함께한 곳에 있었다니

by 이춘노

나는 뚠뚠이답게 먹방을 자주 보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저것 대용량으로 먹는 먹방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맛있는 녀석들>이고, 개인 유튜버로는 쯔양이나, 햄지를 챙겨보는 편이다. 아마 이 셋의 공통점은 현실적인 먹방일 것이다. 이른바 나만의 먹방학 개론은 결국 나도 먹을 수 있는 따라 하기 쉬운 먹방만 본다.

여느 때처럼 난 업로드된 쯔양의 먹방을 보고 있었다. 작은 분식점을 방문해서 차돌박이 라면을 먹는데, 나도 저거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장을 검색하고는 깜짝 놀랐다. 서울에 그 수많은 작은 분식점 중 하나인데, 그곳은 내가 자주 지나치던 곳이었다. 이를테면 무심코 다녔던 직장 근처가 맛집이었다는 깨달음?

<별미 분식>이라는 곳 주변은 바로 사당역이다. 아마 사당역 맛집으로 하면 검색 가능한 곳이겠지만, 나에게 사당역은 좀 의미가 남다르다.

‘641번 버스’


10년 전에 내가 타던 버스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모두 퇴근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동작구청 승차장에서 641번 버스를 타고, 사당역으로 향해 갔다. 낙성대 입구를 지나 예술인마을 승차장에서 내리면 내가 일했던 세븐일레븐 매장이 나왔다. 사당역 주변에 어수선한 분위기와 다르게 주택가 대로변에 있는 매장은 단골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자 잠시 들리는 대리기사나 청소부나 택시 기사들이 많았다. 또 마지막 술 한잔을 마시려고 파라솔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들어가는 밤손님도 제법 있었다.

거의 2년 넘게 했던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하면서 봤던 여러 사람의 모습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던 내 땀이 고스란히 남은 사당역 주변이다. 지명과 지도만 봐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지역이다. 게다가 앞에 새로 생긴 편의점 때문에 몇 번을 봐왔던 곳. 바로 앞의 식당이었다니….

노량진 찜질방을 가보자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침에 그곳을 나오며 641번 버스를 탔다. 그때는 풍경을 볼 틈이 없었다. 시간을 아끼려고 수험 책을 봤고, 눈이 아프면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그래도 짧은 풍경들은 수없이 봐왔던 곳이라서 건물들과 지형이 익숙했다.


버스는 정말 순식간에 나를 내려줬다. 정말 취업하고, 다시 이곳을 올 기회가 없었다. 먹방을 찾아온 것은 사실 핑계이다. 우연이 겹치니 너무나도 신기해서 찾아온 길이다. 그리고 몹시 궁금했다. 과연 내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은 어떻게 변했을지.

오픈 시간에 맞춰서 분식점에서 김밥과 차돌박이 라면을 주문했다. 주말임에도 작은 분식점 테이블은 가득 찼고, 라면과 국물을 조심스럽게 맛보았다. 역시 라면은 재료의 첨가에 따라서 그 맛은 무궁무진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2번 선택지로 칼국숫집을 검색했는데, 이 정도만 해도 반갑게 한 끼를 먹어서 이리저리 사진도 찍어 두었다.

다만 내가 과연 그 당시에 맛집임을 알았다고 해서 이 라면을 먹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었다. 씁쓸하지만 컵라면과 폐기된 도시락과 김밥을 먹던 내가 한 시간 아르바이트 비보다 비싼 라면을 사 먹을 수 있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문밖을 나서면서 우리와 경쟁하던 편의점을 지긋이 바라보고, 내가 일했던 편의점 자리로 갔다. 역시나 편의점은 사라졌다. 나보다 두 살 많던 형 같은 사장님은 그토록 고생하며 편의점을 운영했지만, 항상 운영이 힘들었다. 지금 내가 서 있던 편의점 자리는 나에게 거의 맡기고, 다른 편의점을 챙겨야 생활이 가능했던 젊은 사장님은 폐업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페인트 가게가 들어섰다.

잠시 멍하니 매장 앞에 인도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사계절이 보였다. 매일같이 가로수에 쓰레기봉투를 내다 놓았고,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던 손님들 때문에 하얀 낙엽이 흩뿌려진 바닥. 여름에는 맥주를 마시는 손님으로 가득했던 거리. 그 인도로 폭우가 쏟아져 빗물이 흘렀고, 가을에는 낙엽이, 겨울에는 눈이 쌓여서 고생하던 내가 보였다.

항상 하이네켄을 마시던 단골손님과 레종 블루를 사던 이쁜 여자 손님, 더러 사당역에서 쫓아오던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 도움을 청하던 여자 손님들. 매일 공부를 하다 믹스 커피를 드렸던 청소부 아저씨. 캔을 모아서 밥을 해결하려고 나온 짠한 노숙자.


이젠 그곳이 사라졌다.


사당역을 향해 걸었다. 농협도 그대로이고, 미술관도 사당역도 변함이 없었다. 아쉽지만 그렇게 내가 일했던 편의점은 페인트 가게가 되었다. 초심을 찾고자 가끔 찾는 노량진도 변했지만, 내 생계를 챙겨준 편의점은 나에게 애증이 있던 곳이었다. 그곳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문뜩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을 경험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참 맛있는 것을 먹고도 추억이 고픈 마흔에 과거 여행은 좀 아쉽게 마감되었다. 배는 부른데 마음이 고팠다. 그래도 나의 과거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젠 추억마저 사라질까 봐 글로나마 짧게 남겨 본다. 마음이 고플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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