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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와 9가 달력에 보이면 남원은 장날

남원 장날 구경해봤니?

by 이춘노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시골에 살면 모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생각 말이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보통 세대에 따라서 장날이라는 개념은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사촌이 오면 꼭 조르는 것이 시골 장터 구경이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는 모르겠지만,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을 보고 4와 9가 끝자리에 붙은 날이면 그래도 함께 나갔다. 이른바 4와 9는 시골 장터가 열리는 넘버이다.


항상 사람이 가득했다.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된 지금도 장날에는 도로와 인파가 뒤섞인다. 그래서 보통 장날에는 그 도로를 잘 지나가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 정류소에 쭈우욱 앉아 계시고, 운전자 놀라게 툭툭 튀어나오시니까. 어차피 막힐 거라면 우회해서 돌아가는 편이 마음이라도 편하다. 그렇게 항상 혼잡한 곳. 어쩌면 인구가 빠져나가는 소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활력찬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어릴 때는 장날에 어른들 틈에 따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 붐비는 것이 무섭긴 했지만, 이것저것 볼 것도 많았고, 간혹 간식거리라는 콩고물이 떨어지기도 했으니 안 갈 이유도 없었다. 어머니는 반찬거리를 사려고, 생선 가판대나 채소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갓 나온 과자나 뻥튀기 장수, 귀여운 동물이 있던 한구석을 응시했다. 그때는 시장에서 어미젖을 떼고 얼마 안 된 강아지나 토끼나 염소도 팔았다.

초등학교 때 장날에 토끼를 보고는 키우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아버지가 하얀 놈 한 마리랑 회색 놈 한 마리를 박스에 담아서 사 오셨다. 그래서 그해는 그 토끼를 키우느라 안 하던 낫질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 정말 우연히 안과에 갈 일이 있어서 근처에 갔다가 장날 구경을 했다. 달력을 미리 보고 갔다면, 절대 이날은 피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왕 온 것이니 인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한여름인데도 생선과 채소가 보였다. 먹음직한 족발도 있었고, 계절 탓인지 옥수수도 눈길이 갔다. 그래도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역시나 꽈배기다. 어찌 내가 바삭하고 설탕 듬뿍 담은 물건을 놔두고 가겠나. 이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한 봉지 사 들고 장터를 누볐다. 혹시나 아직도 동물을 파나 싶어서 구석구석 돌아봤지만, 시대가 변했는지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품종인 시고르자브종 새끼를 볼 기회가 없어서 아쉽지만, 추억이 가득한 공간을 지나 보니 꼭 어릴 적의 기억만 있던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첫 소개팅 여성이 추천한 순댓국밥집이 눈에 보이자. 지금 그분은 뭐 하시나 싶은 생각도 해봤다.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 시골 맛 그대로인 순댓국밥집에는 입구에 신발이 쭉 이어져 있다. 차만 없었다면, 저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 마시며 즐겨볼 법도 했다.


한 바퀴 돌고는 차로 돌아가면서 검정 봉투에 담긴 꽈배기를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어릴 때는 이것 하나면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도 시골에 살고 있지만, 대형 마트에 몽땅 쇼핑하고는 살아왔다. 어쩌다 명절이나 되면 장보기 행사를 하면서 갔던 시골 장터만 기억했던 것은 아닐지.

차에 앉아 아직은 뜨끈한 꽈배기 하나를 뜯어먹으며, 가끔 나도 장날 구경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모시고 짐꾼 노릇도 하고, 추억도 떠올리면서 어쩌면 사라질지 모를 장날을 지켜보는 것도 세대를 이어가는 중간쯤에 있는 내가 지켜봐야 하는 숙명이라 아쉽다.


혹시나 남원에 장구경을 하고 싶으면, 잊지 않기를 바란다.

장날의 숫자는 4와 9이다. 이날은 사람 줄어가는 이 도시에도 아직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임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니, 한 번은 구경하고 가시길 추천한다.


잊지 말자! 남원은 4와 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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