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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가 사준 밥상

사람을 만나기 무섭지만, 뻔뻔해지고 싶어

by 이춘노
남원 초밥집입니다

‘초밥집입니다’(?)


“내가 신상 가게로 모신다!”

몇 남지 않은 나의 동기. 비록 마흔을 바라보는 아이 엄마지만, 20대 시절 밝은 미소와 배려는 여전했다.

휴직 후에 연락으로만 밥을 먹자 말하고, 슬슬 피하기만 했던 내가 모처럼 점심시간까지 동기를 기다렸다. 슬쩍 행정지원과를 가기 전날에 연락을 해봤다. 아마도 그 와중에 연락했던 것은 사람에게 진심인 몇 명 안 되는 타 직렬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초밥과 커피까지 전 코스로 얻어먹고는 출장 때문에 일찍 사무실에 들어가는 동기와 헤어지면서 나의 오전 일과는 일단 끝났다.

“휴~”

올라간 내부 온도로 숨이 막히는 차에 승차하고는 내쉬었던 안도의 한숨이었다. 오늘 나는 너무나 뻔뻔하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물론 그 인사는 진심이었지만, 제법 용기가 필요한 하나 하나의 만남이었다.

참으로 바쁜 하루였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을 갔고, 진단서를 발급받아서 약국에서 약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 와중에 보였던 박카스 맛 젤리. 보였던 그 젤리를 8개나 사들고는 직장으로 갔다.


서류를 제출하면서 담당자에게 툭. 원래 있던 과에 인사를 드리면서 죄송스러움에 식은땀이 났지만, 옆자리 직원이었던 동료들에게 투두둑. 옆 방에서 근무하는 동기 형을 만나며 . 다시금 주변 과장님들께 인사를 하고, 친한 글쟁이 형을 만나서 툭. 다른 과에 있지만, 내가 신규 시절에 짜장면 사주셨던 과거 총무님께 툭. 이번에 밥 사 주는 동기에게 툭. 이렇게 젤리가 가방에서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나오다가 결국 다 떨어졌다. 그 외에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몇 지나면서 만나고, 최대한 나는 웃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주변에 민폐를 끼쳐가며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쉬었던 휴직이었다. 그리고 나만의 동굴에서 나오지 않고, 모든 타인의 연락도 단절한 상태로 살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있어 본 적 있나? 과거에 법원직 시험에 떨어지고, 고시원에서 일주일을 그렇게 있어 봤지만, 또 이러긴 처음이었다. 그런 ‘무간지옥’은 스스로 꼽등이 정도로 인식하게 만들고, 좀 먹는다. 잘 알고 있지만, 헤어 나오지 못하기에 ‘무간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지.


어렵게 문밖을 나서고, 책을 보고, 여행을 가면서 글도 쓰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동기들이 나를 끌어내었다. 밥 먹자고 말이다. 뭐 그렇다고 완전 폐인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사이사이 부모도 모셔야 했고, 가까운 친구는 만났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직 낯설었다. 무섭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그렇기에 난 먼저 가까운 지인부터 만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동기들과 과거 함께 나와했던 짝꿍들. 고마움에 약소한 선물을 건네면서 차츰 스스로 질문한 내용에 답을 내리고 있었다.


‘뻔뻔하게 들어가자.’


동기가 사준 밥상을 얻어먹기 전날. 직전에 일하던 사무실에 기증용 책도 놓고 오고, 민원대 랜선 동료들 얼굴을 보기 위해서 사무실도 들렀다. 사실은 나의 선배들 얼굴도 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최근에 일한 ‘같은 업무 다른 사무실 인연(운봉이 이백이)’과는 개인적 궁금함도 있지만, 나의 선배들은 먼저 고마움이 있었다. 나와 함께 본청에 들어와서 고생하신 선배, 나의 첫 발령지에서 나를 챙겨주신 선배, 내 전임자로 답답함을 공감해주신 선배 등. 생각해보니 내가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분들이었다.

그런 예방 주사를 맞고, 찾아간 사무실에서는 땀만 좀 흘렸지. 걱정한 것처럼 불안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밝게 웃는 모습이 좋다며, 격려를 해주셨다. 물론 모든 것이 좋은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마흔이나 되어서 그러한 눈치까지 없다면, 정말 세상 혼자 살아야겠지. 미세하게 나의 불안이 타인의 눈동자에서 보였다. 어쩜 그것은 동정과 불안과 불신이 함께 담긴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담하면서 원장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본인이 타인을 신경 쓰고 걱정하듯이, 주변 사람들도 본인을 의식하고 부담스러워하기에 결국은 서로 눈치를 봅니다. 본인과 주변이 다를 것 없어요.”


사실 여행을 하면서 몇 달을 이 말을 곱씹으며 보냈다. 브런치에도 우울증이나 관련해서 많은 글이 있어서 읽어도 보았다. 그걸로 부족해서 각종 서적도 읽어 보았지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나만 생각하고 살아야 하지만, 남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포기하란 말을 쉽게 하고,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을 하지만 그걸로는 위안이 안 됐다. 그런데도 꼭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선택의 순간이 오면, 할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세상은 답이 정해졌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였다.

사람의 마음이 박카스 젤리 나눠주듯이 툭툭 털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기에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피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받아들이고, 상대가 그럴 수 있단 걸 당연하게 인정하기.


나는 그날 동기가 사준 밥상을 받고, 뻔뻔하게 커피도 얻어먹었다. 오히려 동기는 사람 사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시간을 내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웃으며 대화하게 해 준 점심은 묘하게 마음이 배불렀다.

사실 마흔이지만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는 난 아직 선배들에게 인수·인계받아야 할 것이 많은 신규 같다. 또 선배가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모든 사람에게서 긍정과 부정까지도 감사하게 느껴야 할 미운 마흔 살 아닐지. 맛있는 밥 얻어먹고는 반성 같은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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