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나무뿌리에는 밥집이 그리도 많더라
촌놈이 서울에 올라왔다. 투박한(?) 이름처럼 패션도 서울과 영 어울리지 않았다. 둥그스런 안경과 회색 카라 티셔츠에 옅은 갈색 반바지에 검정 아디다스 운동화. 물론 가방은 장착하고 있다. 딱 봐도 노량진 고시생 모습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여의도에 왔고, 지나고 보니 점심시간 무렵에 빌딩 숲에 나오게 되었다. 서울의 여러 상징이 있지만, 나에게는 63빌딩과 여러 금융과 정치 등이 한 곳에 몰린 여의도는 신세계였다. 그런 곳의 점심시간에 무방비로 노출되니, 나의 촌놈 지수가 너무 높아지고 있었다.
긴소매 하얀 셔츠를 입은 증권 종사자들과 각기 단정하게 입은 직장인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점심 식사를 위해서 빌딩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도 그 와중에 밥을 먹기 위해서 모처럼 유명하다는 닭칼국수 집을 정해둔 상태였다.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봐가며 이리저리 식당을 찾고 있었다. 문제는 도로에서는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이 근처인데, 도대체 식당이 어디 있는 거야?’
빙빙 돌 듯이 목이 꺾이는 빌딩을 보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이곳에는 지하에 식당들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여기다 싶은 빌딩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직장인들의 담배 타임 구역을 스치듯 지나 가니, 드디어 식당 입구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식당들이 모여있는 지하 입구였다. 마치 내가 보기에는 빌딩 나무뿌리 같았다.
거리의 빌딩으로 참으로 화려한데, 지하는 좁은 식당 구역마다 밥집이 자리 잡았다. 물론 식당 테이블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시나 지하에서도 식당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렸는데, 의외로 쉽게 찾았다. 아주 긴 줄로 늘어선 식당 앞이 그곳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했다.
참 먹고 싶은데, 난 도저히 저 줄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먹는 것에 진심이긴 하더라도, 먹고 살려는 직장인의 점심을 차마 나까지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배고프다. 그래서 다시금 빙글빙글 돌아서 빈자리가 있으면서, 내가 먹을만한 음식을 찾던 중에 마침 자리가 방금 난 식당에 들어갔다.
‘청정밀 들깨수제비’
아마 메뉴가 수제비라서 들어온 것이다. 나름 수제비라면 미식가라는 타이틀이 있을 만큼 자부심을 느끼는데, 들깨 수제비는 처음이었다. 주문하고서 경건하게 수제비를 기다렸다. 빈 그릇에 김치도 담아놓고, 미리 준 보리밥도 일부러 수제비가 나오기 전까지 모셔 두었다.
그리고 앞에 나타난 들깨 수제비. 역시나 비주얼은 깨죽 같은데, 한술 떠먹어보니 깨죽에 수제비가 있는 맛이었다. 묘하게 안 어울릴 거 같은데, 고소한 맛이 중독성이 있었다. 그러다 잘 익은 김치와 한 번 더 먹고, 이내 고추장에 비벼 놓은 보리밥을 한 숟가락 떠먹고, 다시 한 숟가락 먹으니 물리지도 않았다. 역시 반찬이 중요한 들깨수제비였다.
아마 단골이었으면, 곱빼기를 시켰을 것 같지만 촌놈이 위축되는 바람에 있는 것만 그릇만 싹싹 비우고 자리를 떴다.
다시금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아직도 줄이 있는 것을 보고 나니, 어쩐지 서울 빌딩 숲에 사는 직장인들이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화려하지만, 결국은 먹고살기 위해서 점심이라도 진심인 것은 서울 사람이나 촌놈이나 같구나. 다를 것도 없지만, 좁디좁은 지하 식당이 뿌리에 있기에 저 높은 빌딩이 버티고 서있는 것 아닐지. 빌딩마저도 밥심으로 버틴다는 생각을 하며 촌놈은 여의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