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덕후도 고기는 먹을 줄 안다

기운이 없는 날, 남원 ‘한우 회관’ 육회 비빔밥을 먹었다

by 이춘노

출근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백수 시절(?)에는 모르는 고충이 하나 있다. 마음만 아프던 시절에는 먹고 싶던 수제비만 먹어도 어느 정도 버틸 만했는데, 일을 시작하고 한 주가 되어가자 나이 탓인지.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뱃심이 떨어지고, 허기가 진다는 어른들 말이 저녁 다 되어서야 느끼게 되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삶.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뭔가 집중하면 아침 먹은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배가 점심도 건너뛰게 하는 마법을 부리고는 했다. 물론 억지로라도 챙겨 먹긴 했지만, 급하면 지나쳐도 몸이 움직이긴 했다. 문제라면 억지로 먹으면 그것도 몸이 잘 받지 않았다. 참 예민한 위장이라 혼자 차분하게 먹는 것이 좋은데, 아직은 여럿이 먹는 것은 무리인 모양이다.


딱 18시에 교육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일정에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시내에 나갔다가 자주 가는 ‘한우 회관’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내가 남원에 처음 오고 나서 발령받은 죽항동에 있는 식당이다. 위치도 적당해서 종종 혼자서 육회 비빔밥을 사 먹으러 가곤 했다. 또 가끔은 부모님 모시고 소고기를 먹기 위해서 갔지만, 역시 육회비빔밥은 가성비가 제일 좋았다.


“몇 명이세요?”


하며 직원이 물으면,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내비치면서 “혼자요~”라며 대충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육회 비빔밥 특대 크기를 주문했다. 보통보다는 고기가 더 들어간 특대 크기를 시켜 놓고는 반찬과 맑은 선지 국물이 나오기까지 혼자 식사할 준비를 차분하게 마쳤다. 먹는 동안 유튜브는 뭘 봐야 할지 고민도 해야 하니까.


혼자 왔지만, 아니 혼자라서 독점 가능한 반찬과 기름기가 있는 개운한 선짓국이 나오고, 돌솥밥에 붉은빛이 감도는 육회가 가득한 비빔밥 그릇이 나온다. 일단 돌솥에 밥을 적당히 그릇에 담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솥에 부어서 살짝 열어둔 상태로 뚜껑을 덮고는 고추장에 밥을 비비기 시작한다. 밥알과 육회의 색이 비슷해지고, 입맛이 도는 적당한 비율이 되면, 한 숟가락 크게 '한입만!'하고 넣었다.

밥알의 단맛과 육회의 연한 고소함이 딱히 참기름이 없어도 맛이 나겠지만, 향으로 더 음미하게 되었다. 그러다 반찬 하나 집어 먹고, 독점한 국물을 떠먹으면 이만한 조합이 없다. 어느 순간에는 국물이 먼저이기도 하고, 순번이 바뀌더라도 이런 비빔밥은 여유 없이 참 게걸스럽게 먹게 된다.

정말 순식간에 비워진 밥그릇에 아쉽다는 느낌이 내어놓은 국물까지 비어갈 때. 잊고 있던 돌솥에 누룽지를 떠올린다. 알맞게 불어있는 밥알을 살살 긁어가며 물 대신 뜨끈하게 떠먹는 맛은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는 여유가 바로 이곳에서 정점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은 혼자 먹기에는 살짝 벅차기는 하지만, 그래도 몸이 허해지면 찾게 되는 곳이다. 한참을 일하면서는 연가를 내서 병원을 갔다가 챙겨 먹었던 메뉴였는데, 먹어보니 묘하게 기운이 났다. 누구나 아는 일이다.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면 몸이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마음이 아픈 상황에서는 추억이 함께 한 수제비가 떠오르지만, 격한 일을 하는 순간에는 시뻘건 생고기도 당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데, 이 정도까지 몰아세운 것은 몸의 주인으로 좀 실격 같다.

이렇게 음식으로나마 몸과 마음을 챙기다 보면 어느 순간 생활도 달라져 있겠지. 그렇게 살기 위해서 나는 이곳에서 먹고 있으니까. 혹시 남원에 광한루를 구경하다가 육회 비빔밥이 생각나면 몸이 원하는 식사 한번 하시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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