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 수제비도 밥을 말아먹으니 맛이 좋다
서울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 ‘인사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딱히 그러한 목적이라면 그 부근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서울 탐방의 시작은 인사동이지만, 끝은 명동성당으로 결정했다.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에는 종로서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곳을 먼저 출발하길 추천한다. 대형 서점이라고 하긴 약간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참 좋다. 주말이라고 해도 한적해서 책을 보기 좋았다. 덕분에 ‘파칭코’와 ‘불편한 편의점 2’도 나온 것을 알았으니, 큰 수확이다.
출구를 벗어나 직선으로 쭉 걷다가 다시 사선으로 된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오전이지만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아마 인사동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다양한 문자가 보이는 다국적 공간이 아닐지. 모든 설명이 각종 언어로 설명되어 있어서 나름 외국인들 틈에서 해외를 온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정했다. 애초에 내가 먹을 것은 밀가루 음식이다. 그건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쌈지길을 구경했다. 아마 다양한 느낌의 이색 공간을 찾는다면, 이곳만큼 눈길이 가는 공간이 있을까? 층마다 다양한 분위기는 눈길이 안 갈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해보고 싶었던, 캐리커처를 해봤다.
간혹 축제의 공간 한쪽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들을 보고는 했는데,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시도해봤다. 10분을 어정쩡한 시선을 느끼면서 앉아 있다가 결과를 보니 무척 밝은 인상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잘생긴 남자 작가님이 날 너무 귀엽게 그려 주셨는데, 마흔인데 너무 어려 보인다고 말하니, 립서비스로 절대 그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셔서 내심 기분 좋게 결제를 했다. 아마도 장사의 내공이 좀 높은 분 같았다.
이번의 주메뉴인 ‘인사동 항아리 수제비’를 먹으러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찾아가는 길과 입구가 신비롭기도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더 아담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시골에서 장사 잘되는 식당에 온 기분이랄까?
혼자인 내가 자리를 잡고, 얼큰 수제비를 시켰다. 역시나 주변에서는 해물파전과 막걸리로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나는 항아리에 담긴 수제비를 마주했다. 1인분이 항아리에 담겨 나오니, 국자를 쓰지 않고는 수제비가 보이지 않았다. 막상 한 국자 떠서 그릇에 담고 보니 역시나 맛있어 보였다.
식기의 투박한 질감과 딱딱한 의자에서도 수제비가 어떤 맛일지 상상이 갔다. 그리고 먹어보니 역시나 유명한 곳이 허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맵지는 않지만, 정이 가는 국물 맛에 수제비를 잘 떠서 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식감. 약간 양이 부족한 느낌에 공깃밥을 하나 시켜서 여러 번 나눠서 말아먹었다. 흡사 라면에 꼬들꼬들한 밥을 말아먹는 기분이다. 아마도 익숙한 맛이 이 수제 빗 집의 비법인 듯하다.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를 나오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광객들을 마주했다.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나가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 좁디좁은 통로에서 배부름에 만족하는 나와 그 맛을 기대하는 사람의 엇갈림이 재미있긴 했다.
배도 부르고, 인사동 길을 쭉 걸어서 아래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서 명동성당까지 가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요즘은 서울에 오면 이곳 명동성당에 자주 오곤 한다. 다른 이유보다도 종교적 성스러움도 그렇지만, 참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많다. 성당이 마주 보이는 카페에서 차분하게 메모를 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과 수제비 맛에 대한 평가도 그리고 지금 내 앞을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