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서 행동해도 어려운 내면의 용기
여행을 다녀와도 아침에 긴장되는 떨림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면 그 아쉬움이 다음날을 더 힘들게 했다. 맛집을 가서 자극적인 음식이 내 입맛을 돋우는 효과는 주겠지만, 매일 그렇게 먹고살 수는 없듯이 말이다.
다만 부족한 잠을 자기 위해서 그러한 장소를 찾는 것이나 술을 사줄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도가 우울증 치료의 전부였다. 다시금 돌아온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스스로 느끼면 자괴감에 빠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우울감은 점차 심해졌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우려처럼 내일 당장 내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지 못한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몇 년을 이러한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끝에 벗어났다고 하면 참 좋은 성공 수기가 될 거 같지만, 항상 합리적이라는 판단은 진행 중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다. 또 약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운동하지 않아서 심약하다는 충고도 제법 들었다.
여러 충고 중에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우울한 사람은 일단 움직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막상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걷기를 해보니 효과는 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땀을 흘리며 시간을 보내니 살도 빠지고 유익하다. 또 나름의 개인적 취미를 가지라고 하는데, 코로나19 시국에 영화를 보긴 불가능하다. 그냥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고, 글을 좀 써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렇지만 생각이 많아서 문제란 말이나 내가 나약하다는 말은 틀린 말 같다. 정말 생각 없이 살고 느긋하게 살면 몸이 편해지는 게 아니라 진짜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며 내 업무가 무엇인지 잠시 잊으신 것 같다. 나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세상살이에 대한 불평을 듣고 일을 하는데, 아무 의미 없는 삶은 단언컨대 우울증보다 싫다. 또 그렇게 주변 상황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나약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나의 삶에 대해서 일부만 보고 평가한 것뿐이다. 내 주변 환경이 어떤지 알고 나의 연약함을 판단 내릴 수 있을까. 그만큼 나를 내보였던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나 여행을 하며 이동하는 중이나 운동을 하면서 틈이 나면 생각했던 과거를 되짚어 보면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했음을 떠올렸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용기인 드러내는 것. 나의 질병에 대한 솔직한 ‘척’을 하고 주변에 말을 해야 했다. 만나지 않고, 술을 사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게 아녔다. 세상이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힘들어서 꿍하고 있던 것을 타인의 말에 상처 받고 숨어버린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 점차 잃어가는 과거의 청춘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러면서 나도 평범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애써 내가 힘들다는 것을 부정하는 행동이 나를 더 병들게 했다.
이제는 딱히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하지만, 애써 무관심했다. 물론 아직도 불안한 마음과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뭐 아프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를 다듬는 중이다. 솔직히 살을 빼고 싶다고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처럼 밝아지고 싶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 비겁했던 것 아닐까. 결국,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마음속에 미치지 않을 용기 한 줄을 또박또박 적었어야 했다.
* 3단원을 마무리하고, 4단원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