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걱정에 대한 솔직한 감정
“언제 밥 한 끼 해요.”
“우리 술 한잔해야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건 가끔 보는 직장 동료건 약속은 참 많이도 잡는다. 기대는 하지 않지만, 또 그렇게 달력에는 점검하지 않는 약속을 연필로 기록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바른 얼굴을 하며 진실 같은 거짓을 말한다. 그러는 사람들이 내가 아픈 걸 눈치챘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오히려 대부분은 무관심하다. 아니 정확히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다. 물론 내가 보는 앞에서는 그렇다.
동기한테 본인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결혼을 전과 후가 다르다는데, 나는 결혼을 안 할 거니 전만 말해보라 했다.
“여자를 만나서 뒷담화 하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노가리를 씹듯이 사람을 씹어야 했고, 덤으로 나를 걱정해줬다. 성별과 결혼 여부를 떠나서 남의 이야기에 그렇게 관심이 많다. 누구와 결혼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헤어졌느냐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사람은 걱정해주는 척하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속마음은 어떠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러한 모습으로 감동할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난감한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보통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행동으로 본인의 상황이 변화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이지만, 지극히 중립적인 상태다. 솔직히 나로 인해서 피해를 본 누군가도 있기에 서로의 관계를 저울질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나약함을 꾸짖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이렇게 말을 한다.
“도대체 전에 일하던 사람은 별 탈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유난스럽니?”
“남자가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을 못 차리느냐?” 등 타인과 비교를 하고 나의 나약함을 나무란다. 솔직히 나는 차라리 앞에서 저렇게 말해주는 것이 고맙다. 대부분은 저렇게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내가 못 듣는 줄 알고 쉼 없이 말을 했고, 불편한 소리는 전언으로 많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극히 소수긴 하지만, 아무 이해 관계없이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생각을 해보면 나를 위해서 술을 사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내가 먹는 것을 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아닌데, 술도 밥도 못 먹었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적당하게 격려를 해주면 뭐든 해결될 것 같으면, 나는 책을 읽기만 해도 우울증은 치료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힘내라는 말만 수백 번 들었지만, 결코 위로되지 않았다. 아마도 진심이 담긴 격려는 본인의 시간과 돈과 애정이 들어가야만 와 닿는다. 오히려 앞에서 비난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말이라면 그게 상처로는 안 남는다. 사람이 아무리 비난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숨고 싶다고 해도 본인이 그 문제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쭙잖은 충고를 할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돈과 시간을 내어서 할 것 아니면, 노가리처럼 날 씹지 말고 모른 척해주는 것만으로 무척 감사할 것이다. 아니면 조금 적당히만 씹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국 오늘 나는 혼술을 한다. 뜨끈한 순대국밥에 소주 한 병 마시면서 <맛있는 녀석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