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가는 세상 속 내 모습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

by 이춘노

일하면서 세상에 참 많은 성격의 사람들과 내 일상을 함께 한다.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만 민원으로 오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사람이 복지와 연관되어 있다 보니 복지로 인한 스트레스보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민원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통의 법과 규정 속에서 이뤄지는 업무는 절차가 있지만, 법과 지침이 없는 감정적인 문제에는 답이 없으니까.


특히나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협박하는 민원인부터 내 일이 아니더라도 정말로 안타깝게 자살을 하는 경우가 들리면 이유가 어찌 되었든 상처를 받는다. ‘과연 자살 방조가 죄가 되는가?’,‘정말 자살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까?’ 그러한 질문을 시험 준비하며 공부한 적이 있다. 깊은 학문으로 접근하기는 어렵겠지만,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개인적 권리이긴 하지만, 파급력이 강한 행위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제삼자인 나도 상처를 받는다. 솔직히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기운이 쭉 빠진다. 안타까운 사연이 뉴스를 통해서라도 들려오면, 당장 늘어나는 업무 강도와 현실성 없는 정책을 비판하기에 앞서 감정상 슬프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뉴스에 오르면,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이 될 만큼 마음도 어두워진다.

마음이 섬세한 사람은 그러한 주변 어둠에 민감하다. 예민하게 소식을 듣다 보면 부정적인 세상이 점점 미쳐 보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사람도 저렇게 죽음을 선택하는데, 나는 뭐가 대단해서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일까? 과연 살아서 이러한 삶을 연장한다고 행복할까?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묻는다.


“행복해?”


질문 앞에 무엇을 붙여도 뭐든 물어볼 수 있다. 특히나 오랫동안 사회복지 업무를 해온 선배에게나 이제 결혼을 해서 신혼인 사람이나 너무 밝은 얼굴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옆자리 짝꿍이나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행복해?’


대부분은 그러한 질문에 머뭇거린다. 마치 평소에 행복이라는 것은 입 밖에도 내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억지로 짜 맞춘 말로 대꾸를 한다. 결론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지만 그래도 살아간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모든 질문에 답은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사실 타인의 행복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다. 누가 결혼을 해서 어떤 아파트에 사는 가를 생각했고, 결혼식을 가서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것을 고민만 했지 정작 내 동기의 신부들 얼굴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만 생각했는데, 결론이 미정이다.

그러는 순간 나만 생각하게 된다. 아니, 주변이 무슨 소리를 해도 부정적으로 들렸다. 뉴스에서는 살인과 짐승 같은 부모들의 학대 소식만 들린다. 그렇다고 경제는 좋아질 기미도 없고, 아무리 내가 돈을 모아도 내 집을 마련할 꿈은 멀기만 하다. 그런데 몸은 아프다. 아니 병들어가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삐걱거리고 옛날과 다르다. 좋은 생각을 하기에는 이미 미친 세상에서 내 모습은 애초에 살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린다. 고통은 이해할 것 같다. 살아가기엔 너무 날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다만 그것이 내 거울에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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