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난 상담을 받는다

상담사도 상담이 필요해

by 이춘노

난 그를 보면 슬램덩크에 나오는 푸근한 감독님이 생각났다. 그냥 만화에 나오는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것이지, 나에게 말이 많다. 그는 나를 상담해주시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다.

나의 직업은 앞서 말했듯이 사회복지 공무원이다. 일선에서 전 연령층을 상대로 상담을 하다 보니 대화를 몇 분만해도 그 사람이 풍기는 느낌으로 대화의 초점을 알아서 맞추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복지 서비스에 대한 신청 문의 혹은 항의가 대부분이지만, 나타내는 스타일은 모두 제각각이다.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서는 표정과 상황으로 유추를 해야 하고, 말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서 정리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서도 민원인에게 유리한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아마도 사회복지가 전문직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서 오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남이 말하는 것을 듣는 직업. 5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은 경험으로 아는 사람의 냄새가 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상담을 받기 위해서 선생님을 찾아가기까지는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일단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겁났다. 지나가다 쳐다보지도 않을 저 병원에 가서 내가 상담했던 민원인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내가 생활을 변화시키려고 잔소리를 했던 민원인과 마주치기도 했다. 역시 이곳은 대기 중에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공간이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불면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출근마다 겪는 심한 긴장감으로 이미 생활은 엉망이었다. 그냥 수면제나 처방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궁금했다. 나도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나에게 한마디 해줄 정도로 상담을 하지만, 이쪽에 전문가들은 어떻게 말을 해줄지?

긴장되었다. 그렇지만 시작은 항상 이런 식이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앞으로 수많은 나의 이야기를 선생님께 쏟아낼 테지만, 일단은 내과 진료와 비슷했다. 혹시나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데, 무서워서 가지 못하고 블로그를 통해서 네티즌 상담을 받고 있다면 단언하건대 특별한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 약물적인 수면제나 우울증에 필요한 약물 처방이 있지만, 대부분은 선생님에게 말하고, 또 말하면서 나와 선생님과 대화 속에서 내가 인정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치료는 끝나지 않는다. 나도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예민한 성격으로 기록과 기억으로 정리한 나의 상황을 곱씹어도 해결이 나지 않는 사람이 무작정 이야기를 한다고 해결될 일은 없다. 게다가 남들이 보기에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몇 년째 상대하면서 타인을 참견해온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거라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조금 받아들였던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우울함의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일단은 우울도 평범한 것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만 그렇게 특별하게 힘든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려웠다. 아마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전문가의 이런 지속적인 설득이 아니라면 나이 30~40대 사람이 쉽게 변할 수 있을까? 상담가도 결국 병자이기에 전문가에 상담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편해졌다고 믿고 싶었기에 편하다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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