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나비를 마주치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by 이춘노

반소매가 좀 어색한 가을밤이었다. 그래도 낮에는 아직은 반소매를 입어야 생활하겠고, 밤에는 긴소매를 챙겼어야 했는데, 모처럼의 회식으로 차도 놓고 간소한 상태로 나왔다. 그래도 쌀쌀한 날씨지만, 술기운에 집까지 30분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오늘은 말이 참 많은 하루였다. 일찍 출근했는데, 기한이 불금인 공문이 쌓여 있었다. 행사도 하나 잡혀있어서, 2층 회의실 준비도 오가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다시 챙겨보니 흘려본 마감 기한 일이 있었다. 역시나 담당자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부랴부랴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 전화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저음에 내 목소리가 쉴 틈 없이 사무실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스템도 엉망이다. 바뀐 시스템 때문에 전국에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여기서 적어서 혼잣말로 욕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그 한마디를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불금인 오늘 회식이 있었다. 보통은 잔업을 마치고 집에 가면 대충 끼니를 때우고 글을 쓰는데, 오늘은 밤까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당연하게 수다스럽다. 다만 솔직하게 말하면, 글은 100% 진심이라면, 말은 50%만 진심이다. 사실은 맞지만, 속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이나 부질없는 말. 대학교 기말시험에 답안지를 늘려 쓰듯이 길게 서술하는 것처럼 말도 그렇게 한다. 단순히 그 공간의 침묵이 싫어서 말을 꺼내지만, 듣고 보면 별 이야기 아니다. 그냥 웃자고 하는 말들이다. 그렇게 혼자 있을 때는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심각한 고민을 하지만, 사람들 틈에서는 꽤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그렇게 불금을 보내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고등어가 자리를 잡고 식빵을 굽고 있었다. 원래는 사진만 찍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가까이 찍어도 보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길래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양이 촉감이다. 그렇게 한동안 고양이와 눈으로 인사하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쌀쌀해지는 가을 날씨에 손과 팔이 좀 추웠다. 그래서 더 팔을 흔들면서 걷다가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법 고양이를 좋아하고, 혼자 사는 입장에서 고양이 키울 정도의 돈은 벌고 사니까. 한 마리 분양받아서 키워도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기왕이면 나는 고등어였으면 좋겠다. 뚱한 표정이 나를 제법 닮아서 더 친근할 것 같다. 이불에 파고드는 고양이와 함께 잠들면, 그래도 불면증이 해결되지 않을까? 고양이가 있으면 사람처럼 이야기하듯이 100% 진심으로 말을 하다 보면 속이 풀리지 않을지. 고양이를 쓰담 쓰담하며 안고 책을 읽는 모습도 생각했다. 참 기분 좋은 상상이었다. 이름은 ‘춘식이’로 지으면 좋겠다. 내 성을 준다면 ‘이춘식(?)’으로 말이다.


그런 상상 끝에 나는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요하다. 너저분한 노총각 방이 고개를 돌릴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 혼자 쓸쓸하게 있을 나의 춘식이를 생각하니, 나는 고양이를 아니 키우는 것이 맞는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나비가 혼자 있어야 할 외로움은 좀 아닌 듯하다. 그건 너무 내가 이기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고양이를 참 좋아하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마주치는 인연에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

표정만 저렇다 참 착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