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앞에서

어머니 수술을 통해 생각한 가족의 가치

by 이춘노

“아들, 엄마 수술할게.”


밤새도록 고민을 하시다가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아들에게 전화를 주신 건데, 그 자체로 감사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복지 업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이렇게 수술을 받을 일이 있으면 가능한 자원을 연결해줬지만, 정작 내 가족에게는 참 무심했다. 사실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 막상 어머니가 안 계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위해서라도 수술을 받으셨으면 했다. 내 나이가 37살이지만, 경제적으로 버겁긴 해도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을 상상하긴 싫은 나이다. 과거에는 상투를 틀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모든 일에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살았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3일 연가를 내고서 수술 전날 입원을 하고, 하루는 수술 경과를 보고 추가로 쉬기로 했다. 수술이 잘 된다면 추석 연휴도 곧 올 테니 병원에 다니는 것도 시간적 여유는 좀 생길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입원 절차를 준비하면서, 병실 배정을 받고 추가적인 검사를 받고 수술 전 동의서를 작성하느라 하루를 꼬박 보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수술하기 위해서 침상으로 수술실로 이동하는 내내 누워있는 어머니나, 그 뒤를 따르는 보호자는 입을 꽉 다물고 손 한번 잡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불과 어제까지 수술을 받기 위한 절차로 서명했던 동의서나 오지 않는 잠에 짜증이 났던 순간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사람은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돌려 막는다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면서 놓은 손을 흔들며 무사히 마치시라고 인사했다.


아침 8시부터 그런 풍경은 여러 번 목격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울음을 터트렸다. 울지 않으려 하는데, 누군가 터진 눈물에 나도 울고 싶어 졌다.


기다린다.


무작정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변수와 어찌할 수도 없는 자괴감에 수술 진행 모니터만 빤히 지켜봤다. 긴 시간임에도 짧게 느껴지고, 그래도 9시가 안 되었다. 의사는 수술 시간이 3시간이 넘을 거라고 했다. 아직도 두 시간이 남았는데, 갑자기 검사를 받으러 가며 짜증을 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잠들다 혹시 깨어나지 못할까 봐 불안한 환자에게 왜 난 다정한 말을 못 했을까? 더 거슬러서 일 때문에 집에 못 가고 우리 집 가난을 원망했던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떠올랐다.


그 와중에 수술을 마친 환자의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같이 수술한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올 때마다 아닌 걸 알면서 시선이 갔다. 이제 한 시간 지났고, 의사가 말한 3시간 중 아직 반도 안 왔는데, 초조해서 대기실을 돌도 돌다가 안 먹던 커피 믹스를 한 잔 마셨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혹시나 어머니가 안 계신 이후를 생각했다. 지금도 고집이 세신대, 그 투정을 어머니 아니면 누가 받아 주실지? 아버지는 그냥 의자를 만지작거리며 기다리셨다.


두 시간이 지나고 수술실에 나오는 사람이 있고, 갑자기 보호자 면담을 요청하는 때도 있고, 오로지 수술실 문에 집중되는 시선과 소리에 내가 예민해졌다. 세 시간을 넘기는 순간까지는 의자에 앉았지만, 슬슬 시간이 넘어가면서는 3분에 한 번씩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혹시나 수술이 연장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건가?’ 12시를 넘기고 의사가 말한 3시간을 1시간 넘길 때. 아버지에게 식사하고 오시라고 하고는 정작 나는 입맛이 없어 굶었다. 3분마다 보던 핸드폰 화면이 바뀌며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끼니를 거르는 와중에도 타인인 동료에게는 말을 아꼈다.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시선은 수술실 입구를 바라본다.


시간은 참 잘도 흘렀다. 그리고 오후 1시 반이 넘어서야 의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몇 남지 않은 보호자 중에서 우리 어머니 성함을 불렀다. 평생을 나의 엄마로 불리던 우리 어머니.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간을 절제하고, 쓸게도 제거했는데, 보시겠어요?”


나는 그냥 됐다고 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의사가 했던 말이 지금은 너무 반가워서 고마웠으니까.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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