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치료 구역

병실에서 시간 보내기

by 이춘노

병원에 있으면서, 간혹 ‘여자 · 남자 병실을 나누는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을 간호하면서 들었던 의문이 병자는 성별이 있지만, 간호하는 보호자는 성별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녔다. 아버지 때도 같은 병실에 보호자는 대부분 여자였다. 그리고 여자 병실은 보호자가 또 남자도 있었다. 결국, 병실 사람들은 단순히 놀러 온 것이 아닌 같은 목적으로 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24시간을 함께하는 질병 동료와 그 사이에 보호자들도 유대감이 생긴다.


하루는 명절을 맞이해서 포도 한 상자를 챙겨갔다. 나는 딱히 포도를 먹지 않는 편인데, 아버지가 워낙 좋아하셔서 한 상자 챙겨서 가지고 갔더니 들어가는 순간 달달한 포도 향이 병실에 풍겼다. 일부러 넉넉하게 챙겨간 것도 있지만, 내가 없는 중간에 잘 부탁드린다며 슬쩍 한 송이씩 뇌물을 돌렸다.

포도로 인사를 하니, 어디 거냐고 묻길래. 남원시 산내면 포도라고 하자, 문 쪽 할머니께서도 거기 분이시란다. 거리도 먼 지역에서 여기까지 오셨다면 큰 수술을 하셨을 텐데. 목소리는 정정하셨다. 아마도 나도 한 번은 뵈었을 것 같은데, 웃으며 나중에 면사무소 오시면 커피 한 잔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보호자가 웃으며 면사무소 가실 일이 없다 하셨다.


세상 참 좁다. 아무리 전라북도라고 하지만, 같은 병실에 내가 일하는 면사무소 주민이 어머니와 함께 입원할 수 있을까? 대학 병원에서 산내면까지는 차로도 1시간 40분은 걸리는데 말이다. 보호자도 대단하고, 수술 후에도 건강하신 할머니를 뵈니 더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포도를 먹고서 명절에 병실에 있는 가족을 위해서 창가 쪽 아주머니의 며느리가 음식을 싸 왔다. 덕분에 명절 음식을 몇 조각 얻어서 명절을 보냈다.


다행인 건 대학 병원 병실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아마 그것이 있었다면 소수의 환자나 보호자는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대다수는 소음으로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침대 하나당 각각의 가정집이 옮겨 온 것인데, 아까 같은 정만 오갈 순 없다. 집에서도 채널을 뭘 보느냐로 싸우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리모컨을 잡고 놓지 않으면 그렇게 꼴 보기가 싫었다. 눈치 없는 사람이 리모컨을 독점하면 항상 스포츠 경기나 재탕인 드라마를 봐야만 했다. 적어도 어머니 수술 후에는 적막하긴 하지만, 그러한 다툼은 없었다. 어차피 다들 아프고, 짜증 나고, 힘들다. 그래도 적막하면 시간이 안 가니 결국 수다를 떤다.

사람들이 정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즐겁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수다만 한 것도 없으니까. 평소에는 대화가 없는 아버지는 간이침대에 누워있다가 병동을 걷기만 하셨다. 역시 대화의 흐름은 아줌마들이 잡았다. 그리고 할 것이 뭐 있겠는가? 자녀 이야기와 호구 조사를 하는 것뿐.

나에게도 질문이 들어왔다. 며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아들이긴 한데, 나이와 직장이 궁금하셨나 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벌써 나이가 곧 40이에요.”


나는 속으로 ‘엄마 아직 나 37살인데요….’


“근데 저 아들 하나인데, 아직 결혼도 못 하고 엄마 간호를 하고 있네요. 직장도 공무원씩이나 하면서….”


그리고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오면 속으로 더 내가 안타까웠다. 이런 게 팩트 폭력일까? 그렇게 말로 녹다운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말없이 병동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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