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 지하실에는 영안실이 있다

죽음이 갖는 슬픔의 무게

by 이춘노

2019년의 어느 퇴근 무렵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수술 후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어머니 일이 아니라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퇴원 후라도 인천까지 갈 수 없어서 혹시 문상하러 갈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었다. 사실 9월부터 달이 넘어간 10월까지도 어머니 입원에 수술에 명절에 정신없었다. 간혹 올라가는 병원 검사 동행을 하면서도 면에서 추진하는 각종 행사도 많아서 주말에도 바쁘게 살았다.

그래도 가야지 싶어서 주말에 일한 대체 휴무를 쓰고 인천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면서 생각해보니 이모부는 어린 나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하시던 호탕한 분이셨다.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중학생인 나에게 주셨던 꽤 큰 용돈이 기억에 남았다. 그랬던 분이 암 진단을 받으시고 투병 중에 돌아가셨다. 최근에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두 번째 암 환자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수술 직후에 어머니는 가장 가까운 언니가 걱정되고, 본인도 걱정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암이란 게 흔하면서 무서운 병 같다.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요즘 적당한 규모의 병원에는 다 장례식장이 있다. 수익성이 좋은 것을 떠나서 내가 어릴 적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르던 상황이 많았는데, 병원에서 운영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동이 편하게 하려고 늘었나 싶다. 어느 한 사람의 죽음에는 살아온 인생만큼 사람들이 찾을 테니까.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본 것은 내 기억에도 여러 번 있었다. 아주 어릴 때는 할아버지 염을 하기 전이고, 고등학교 때 친척 어르신들 염을 하면서 시신을 무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군대 복무를 하며 의경 생활을 했을 때였다. 통로 하나로 문이 다닥다닥 붙은 방만 있는 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곳에는 의문의 사고로 전기장판을 켜놓은 채로 4일간 방치된 시신이 있었다. 시신에서 나오는 역한 냄새 때문에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을 들게 했다. 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있을 때 엘리베이터 의자에서 쉬고 있을 때 실려 나가는 시신들을 덤덤하게 지켜봤었다. 그리고 일하면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서류상 처리하긴 했다.


어릴 때 무심코 내려간 병원 지하에 영안실이라는 공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옷을 털고 몸서리치게 떨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고 바라봤다.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경우는 좀 드물지만, 영정 사진 속에 장례식장에서는 수없이 마주했다. 그만큼 지인이 죽거나 지인의 지인이 죽거나 별로 친하지 않아도 가서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도 지금은 가까운 친척 어르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가족의 대표로 온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이미 너무 우셨는지 눈이 빨간 이모나 인사 가면 항상 계시던 사촌 형님과 형수님이 나를 알아보셨다. 이모부께 절을 드리고, 상갓집답게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아마 어머니가 오셨다면 일단 이모와 함께 우시느라 공간이 곡소리로 가득했을 거다. 그래도 덤덤하게 밀렸던 근황을 들으며 천천히 식사했다. 그때야 이름만 들었던 나의 친척들도 조카들도 인사를 하고 이렇게 생겼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일어서려고 했는데, 마침 염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1층으로 내려가 이모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 따르는 행렬에 나도 함께했다.

이모부는 너무 자연스럽게 누워계셨다. 편안한 미소가 보이는 게 꼭 살아계시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지만, 천주교의 장례 절차에 따라서 기도를 하는 와중에 슬퍼하는 가족들을 보기 힘들어 이모부를 계속 지켜봤다. 성인이 되고 가까운 지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라서 절차 하나하나에 감정 이입되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에 그럴까? 사촌 형님의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를 낭독하는 순간에는 나도 눈물이 났다. 아들은 아버지가 더 사시길 바라는 마음에 치료했겠지만, 그 고통을 견디는 이모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아프게 와 닿았다.


집으로 돌아가며 내가 어머니에게 수술을 받으셨으면 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설령 어머니가 수술을 받지 않겠다 했어도 난 아마 어떻게든 설득을 했을 것이다. 아마 그래야만 나중에 내 마음이 편할 테니까. 이미 어머니의 형제들이 돌아가시지만, 나만은 아직 그러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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