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뭘 먹을까?

고통 속에서도 사람은 먹는다

by 이춘노

중환자실에서 누군가 죽었다.


중환자실은 응급실에서 급하게 올라갔을 때 일주일 안에 죽고 사는 경우가 결정되었다. 처음이야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식욕도 없지만, 주말이 지나면 사람이 배가 고파졌다. 아까도 죽어 나간 시신과 그 뒤를 따르는 유족을 바라보면서 염치없게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의자와 텔레비전이 있어서 별수 없었다지만, 나도 타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도 입원을 해보니 병원에서는 환자가 먹을 음식이 중요해서 영양 좋은 식사를 끼니마다 챙겨 줬다. 그냥 먹고 자고 치료만 받을 수 있어서 생활로 보면 편하다. 다만 아프니 입맛이 없어 그게 그거일 뿐이다. 문제는 보호자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불편하게 환자 침대에 테이블을 쓸 수 없고, 환자식에 추가로 보호자 식을 하나 해서 먹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대부분은 라면에 즉석밥을 먹거나 어디든 있는 병원 식당에 갔다.

평소 같으면 그 돈으로 저래 사 먹지 않을 거 같은데, 나가기는 귀찮고 병원 주변에는 먹을 것도 한정적이니 별수 없다. 그냥 메뉴를 돌려먹기로 꾸준히 사 먹었다. 오전은 김치찌개, 점심은 된장찌개, 저녁은 비빔밥 아니면 라면이나 김밥. 웬만한 병원에 있는 이런 식당 메뉴는 다시 말하지만, 외식해서 먹지 않는 것들이다.


취업을 위해서 노량진에서 생활할 때 한 끼 식사가 3,000원 정도로 먹었다. 양도 많았고, 그마저도 돈을 아끼느라 컵밥이나 주먹밥, 김밥을 먹으며 생활했다. 그런데 주머니 사정은 같은데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6,000원 밥도 끼니마다 사 먹어야 했다. 나까지 아프면 안 되니까. 병문안 온 분들이 주신 봉투에서 야금야금 쓰다 보면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평범하지 않다?’


‘비상상황?’


그렇게 몇천 원 아끼기 위해서 커피도 안 마시고, 먹고 싶던 음식도 구경만 하던 상황에서 그보다 몇 배를 쓰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돈 아끼려고 위장 버리는 행동을 하고, 공부한다며 서울에서 집에 전화도 안 하던 나였다. 그런데 매일 같이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집밥보다 못한 외식에 돈을 쓰는 이유는, 잃었기 때문에 더는 안된다는 선택 아니었을까?

물론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굶어야 했다. 지금이야 돈을 벌고 있지만,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 생각 안 하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나를 생각하는 보호자의 조력자 덕분이었다.


나에게는 민이라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 힘들 때마다 지원해준 고마운 친구인데, 역시나 서울에서 병문안을 와주었다. 나에게 밥을 사주고, 예수 병원 근처를 걸으며 기운 내라는 말을 하면서 지갑에서 꺼내 준 9만 원이 잊히지 않았다. 보통은 3·5·10만 원으로 가는 상황인데 아마 민이는 지갑에 있는 만 원짜리가 그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돌아가며 했던 말은 네가 잘 먹어야 한다는 걱정이었다. 그렇게 먹었던 그 날 저녁 김치찌개는 몹시 매웠던 것 같다. 눈물이 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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