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17
시청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고, 망자의 시신이 갈 곳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시청에서 1년 동안 처리했던 익숙한 무연고 망자의 장례 문제였다. 그나마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고인은 의사가 지켜본 가운데, 쓸쓸하게 눈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망자가 생전에 살았던 마을에서 끊겨버린 자녀의 연락처를 수소문해보는 역할이지만, 담당자는 급하게 공고 절차와 여러 전화를 받고 있을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받기 이틀 전에 김완 작가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으로 세상에 고독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진 장본인의 강의는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머릿속에 잔상이 많이 남아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3일 만에 무연고 관련 소식에 금요일 밤 야근을 하면서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사회복지는 죽음도 깊게 관여한다. 죽음도 전반적인 삶에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인과 혹은 가족의 곁에서 함께하는 공간에서 아니면, 병원에서라도 죽음과 장례의 시간이 바로 연결된다.
하지만 고독한 죽음은 사회복지와 더 가깝다. 내가 시청에서 맡았던 여러 업무 중에서도 무연고 사후 처리 업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그 어느 것보다도 죽음은 존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고민하는 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독사는 사회복지의 대안이 적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무연고를 크게 보면 가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가족과의 단절로 부모나 자녀나 배우자가 시신을 거부하는 예도 종종 있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이장님들이 나서서 고인의 장례나 사망신고도 나섰지만, 이제는 옆집에 누가 죽어도 모르는 세상이다.
그래서 행정에서는 단순하게 인수 거부되는 고인의 장례나 혹은 죽음의 시간과 장례의 틈을 좁히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적어도 작가의 직업이 나서는 일이 적어지도록 하는 것이 또한 나의 일인 것이다.
작가가 강의 중에 질문을 했다. 시체가 썩었을 때 나오는 냄새를 아느냐고, 그런데 난 그런 경험이 있다. 그것도 20대 초반에 파출소로 파견을 나간 잠깐의 의경 생활이 있었다. 군산의 쪽방 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냄새가 봄날의 꽃향기를 죽일 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인은 아팠던 것 같다. 유독 추웠던 초봄의 그늘 추위에 장판에 의지하며 잠들었고, 그렇게 사흘 넘게 깨어나지 않았다.
난 감식반이 올 때까지 경찰 통제선을 잡았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내 후각을 파내고 싶었다. 차후에 감식반 직원이 나중에 피웠던 담배 향기가 그토록 달콤했던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은 두렵다. 업무에서 오는 공포 말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혹여나 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하고, 신경을 쓴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러한 일이 있더라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나 또한 외로운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처럼 인간에게 무서운 것은 질병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외로움. 고독 아닐까.
강의 중에 죽음에 관련된 질문에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에서 기억하는 것은 ‘마흔에 당신이 당장 죽는다면, 아쉬운 것이 있느냐’였다. 내가 딱 마흔이었고, 그러한 생각을 항상 해왔던 사람이기에 속으로 질문에 답을 해보았다.
요즘처럼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온 적도 없다. 마음도 비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일 당장 죽어도 미련은 없으나, 아쉬운 것은 부모님의 마지막을 내가 못 보내드린 것이 마음 아플 것 같다.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부모님보다는 사흘은 뒤에 그러한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사는 이유랄까.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금 내가 사는 이유라는 생각에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고독한 남자의 독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