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섬진로 24

by 이춘노

부모님은 각자의 약 바구니가 있다. 한 달 치 혹은 석 달 치 약을 타 오시거나,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약봉지들이 가득하다. 어쩌다 부모님이 입원할 때는 먹는 약을 챙기느라 고생을 해서 아예 약봉지 말고, 처방전을 같이 두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최소한 내가 그 약봉지를 다 들고 갈 필요는 없게 말이다.


그만큼 어찌 보면 살기 위해서 먹는 밥이라기보다는 약을 먹기 위해서 식사를 챙겨 먹는 시간이 더 많다. 사실 우린 어찌 보면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딱히 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을 제외하고, 젊은 나도 약을 먹고 있다.

아침에는 혈압약과 영양제도 먹고, 저녁에는 수면제도 먹는다. 좀 몸이 춥다 싶으면 감기약도 함께 먹는데, 코로나 시국에 감기는 줄었지만, 어쩐지 몸살은 제법 있었다. 덕분에 진통제는 항시 비치하고 있다. 항상 아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두통이 심했고, 공부할 무렵에는 극심한 위장병에 시달렸다. 어찌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어느 순간에는 500원 동전만 한 원형 탈모도 온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두통과 불면증이 심해지고는 우울증과 더불어 약을 먹고 있다.


이제는 하루 식사의 기준이 배고픔이 아니라, 약을 먹을 시간에 맞춘 행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지만,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인간이 아프게 사는 것을 바라는 바보가 어디 있겠나. 다만 그렇게 아프게라도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

그러나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사는 이유가 없어 보였다. 돈을 벌어서 약값에 쏟아내는 인생이 뭐가 좋을지.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사는 이유에서 가장 큰 고민은 그런데도 약을 먹고 살아가는 내 모습이다. 참 어울리지 않는 생각과 행동의 불균형에서 아등바등 사는 가련한 노총각은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약봉지에 하나에 하루를 살아가는 삶도 이유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애처롭지만 그 자체도 목적이 있는 행동이니까. 무의미하게 알코올에 의지하는 것이나, 타다 놓은 약을 방치하고 놔두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삶이라고 생각되었다. 조금은 고통스럽지 않기 위한 노력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내가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이유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런데도 난 한 가지는 꼭 지키고 싶다. 치료가 되지 않을 순간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병상에 누워있기는 싫다. 아무리 약봉지를 달고 사는 삶이라도 차마 산소호흡기는 달고 싶지 않다. 약을 먹는 것도 내 의지일 것이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노력이기에 그건 긍정하지만, 의식도 없이 타인을 고생시키는 것은 오랜 병간호 생활하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단언한다. 생명을 연장하지 말아라. 절대로 내가 죽어가는 순간에 날 살리지 말아라. 약을 목 넘김이면서 살려는 의지가 있는 순간이 아니라면 그건 사는 게 아니니까. 제발 날 내버려 둬라.


물론 그렇게 다짐하지만, 오늘도 약봉지를 하나 뜯어서 입속에 털어 넣었다. 이게 아니면 난 잠을 이루지 못하니까. 꼭 챙겨 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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