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날로그 사람이다.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새로운 기술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 줘도 큼직한 노트에 하루 일정을 미리 적어 두고, 진행 중인 것은 파란색으로 해결되면 빨간색으로 마구 표식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가방에는 그때그때의 감정을 적을 수 있는 손바닥보다 살짝 큰 무지 노트와 펜을 항상 갖고 다닌다. 물론 다이어리를 따로 기록하는 것은 필수이다.
좀 요란한 메모법이 나름 체계를 갖춘 것도 3년 전부터이다. 그나마 디지털화된 것으로 양보한 방법이 스마트폰으로 하는 가계부와 다이어리 메모장 정도이다. 긴 시행착오 끝에 정립된 나만의 방식에서 업무노트와 창작 노트와 하루를 기록하는 일종의 실록 같은 다이어리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쁘게 꾸미고 이쁜 글씨로 적는 것도 아니다. 가끔 보면 내가 써놓은 글씨가 너무 형편없어서 도대체 뭐라고 써놓았는지 모르는 글씨는 그냥 지나친다. 다만 하기 위해서 써놓은 일정은 어김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적어 놓았다. 가끔은 이것이 강박감이 아닐까 싶어서 한 해는 다이어리나 업무노트를 안 써본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해는 나에게 가장 힘든 해였고, 기록도 없다 보니 어찌 살았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라면 아팠고, 힘들었고, 무너지기만 했다. 그게 2017년 무렵이니, 오히려 적는 것이 좋다고 느낀 것은 얼마 된 자각은 아니었다.
메모광이라 싶을 정도로 뭔가 적는 버릇은 오래 갖고 있었지만, 기록을 더듬어서 볼 수 있는 것은 최근 몇 년부터이다. 참 손이 많이 가고, 요란한 생활법이지만 그래도 끊을 수 없다. 그냥 적다 보면 사람이라서 놓치는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업무를 하면서 대충 적어 놓은 메모를 그대로 붙여 놓고는 그 과정을 덧붙이면 나에게는 그 자체가 기록이다.
기왕에 하는 메모라면 잘해볼까 싶어서 메모법에 관련된 서적도 몇 권 읽었지만, 지금 하는 수준에서 크게 변화를 주기는 너무 따라가기 어려웠다. 다만 이런 습관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나름의 구속이라는 것은 항상 느끼고 있다.
일단 보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알고는 있다. 메모를 하다 보면 손에 맞는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고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악필이라도 같은 펜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책상에는 펜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항상 적는 모습은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에서 고리타분함을 느낄지 모른다. 쓰고 있는 나도 답답한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그런데도 멈출 수 없는 나의 습관은 일기처럼 쓰는 다이어리에 수치를 적어서 다시금 볼 수 있는 자료로 만드는 것으로 다듬는 중이다. 급격하게 늘었던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면서 과거의 다이어리를 보려고 했다. 당시에 입었던 옷이 지금은 맞는지 모르니 체중을 기준으로 옷을 봐야 했는데, 제법 도움이 되었다. 간단한 일정만이 아니라 만났던 사람들이나 여행을 갔던 것들. 일단 기록하다 보니 끝도 없지만, 제일 단순한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쭉 나열하고 지우다 보면, 어김없이 하루가 갔다. 그렇게 적다 보니 바쁘게 살게 되었다.
물론 남들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다. 기억력이 적은 사람이고, 아날로그적 사람인지라 손으로 뭔가 적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그 덕분인지 바쁘게 살게 되었다. 아마 나의 이 성격과 메모가 나를 힘들게 할지는 모르지만, 이 방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도 별수 없는 사람인가 싶다. 그렇게 적다 보니 이렇게 책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