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들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굵직한 목돈이다. 첫 번째 휴직에는 정말 돈 한 푼 들어오지 않은 10개월가량을 보냈다. 그만큼 월급이란 말처럼 한 달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절대적인 삶의 이유이다.
대학교 시절에 목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하기 위해서 인력소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골에 다리 건설장이었고, 다음에는 국악원에 며칠 갔었고, 마지막이 농협에서 하는 알밤을 수거하는 작업이었다. 평소 몸이 약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노동에 정말 쓸모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는 좌절하고 돌아갔던 추억이 있다. 젊은 시절의 흑역사인데, 공교롭게도 다시금 떠올리니, 내가 일하는 면 언저리였다. 아니 지금 내가 일하는 곳 근처였던 것 같다. 하여튼 그 이후로는 아르바이트도 능력껏 소소하게 돈을 벌면서 살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라고 해봐야. 끈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이고, 낮과 밤을 바꾸면 조금 돈을 주는 시스템이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이만한 아르바이트도 없었다. 그래서 꾸준하게 해왔고, 그 경험이 솔직히 어느 사회복지 공부보다 더 큰 경험을 주었다.
이른바 피시방 폐인들이 줄 곳 살면서 기다란 손톱으로 구겨진 돈을 주면서 그날의 승전을 자축하는 모습이나, 알코올 중독 단골 아저씨나, 새벽같이 종이상자와 캔을 모으는 쪽방 사는 아저씨. 그리고 이름만 사장이지 알바보다도 일을 더 하면서도 항상 부족한 자금에 골머리를 싸던 점주 형님. 대리를 뛰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3대를 돌리고, 편의점에서 몸을 녹이는 투잡을 뛰는 아저씨들. 그런 경험들이 쌓인 편의점에서 나는 내려와서 월급을 받고는 기분이 좋았다. 큰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솔직히 평범하게 산다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그 돈이 작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장 나는 차가 필요했고, 그 평범한 시작을 위해서 난 1년을 자전거를 탔다. 차를 할부로 구매하고, 연애하면서는 결혼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기에는 내 조건이 결혼 시장에서 참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단하게 처지 바꿔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문제였는데, 그 당시에는 자존심이라는 것도 있어서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도 돈이라는 것을 모아가면서 꿈을 꾸어볼 가치는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이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3년쯤 일하면서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남들은 지출하지 않아도 필요 없을 항목이 많다 보니, 돈을 모아도 그 속도가 더디고 따라가기 힘들었다.
결혼을 슬슬 포기하기 시작한 것도 그러고 몇 년 안 돼서였다. ‘사랑에 돈이 필요 없다.’라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난 믿지 않는다. 그 돈이 없어 힘들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보고 있으니까. 행복이라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참 사는 것이 고단했다. 그래서 결혼도 포기했다.
덕분인지. 나는 물질적인 것에 큰 구속을 당하지 않는 편이다. 이것도 휴직하면서 깨달은 경험이다.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나는 사는 사람이었다. 간혹 부모님 간병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했지만, 과거에 열심히 살았던 내가 모아둔 돈으로 어찌 해결되었다. 나야 작은 원룸과 읽을 책과 노트와 펜과 컴퓨터만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돈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로또도 구매하는 속물이지만, 현실 속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나에게 적당함은 그러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포기한 삶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