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으니 주말도 녹아버렸다

섬진로 32

by 이춘노

12월의 평일은 눈이 무지막지하게 내리던 날이 많았다. 게다가 기온도 떨어진 가운데, 난 출근길이 전날부터 걱정이 되었다. 아마도 어김없이 비상근무 대기를 해야 했고, 눈이 오면 그 피해 조사하느라 추운 날씨에도 땀이 흐르는 평일. 결코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는 문제 덩어리로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어른이 되면서 눈은 불편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감성이 마른 것은 꼭 나이 탓은 아니었다. 도로가 폭설로 아슬아슬한 빙판길로 변한 시점에서 출근은 목숨 건 도전이었다. 그렇게 멀미나는 승차감의 버스를 타는 와중에도 눈은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푹푹 빠지는 눈과 길가에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점심이 다가와서 간신히 몸을 녹였다. 정확히는 차갑게 식어버린 땀을 닦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잠시 밖이 소란스럽더니 하얀 생명체가 탄생했다. 귀여운 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게 호기심이 생길 무렵에 다시금 출장을 다녀오니 더 큰 눈사람이 귀여운 것들을 지키고 있었다.

마을에 얼마 남지 않은 어린 마음들이 친 장난이겠지만,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타는 모습도 이뻐 보일 나이가 돼버린 것 같다. 아마도 아이가 많은 집이었다. 이러한 귀여운 함성의 근원지가 말이다.

금요일에도 눈이 많이 내렸고, 역시나 목숨을 담보로 퇴근을 했다. 그래도 연이은 눈길 속에서 제법 익숙해진 풍경은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렸고, 이내 이어폰에서 음악을 듣고 지났다.


“오겡끼데스까.”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에 나도 묻고 싶었다. 나의 청춘은 어찌 되었던가? 눈으로 가득 찬 저 들판과 설산에 외치고 싶었다.


결국 답은 없었고, 주말은 고된 평일로 몸이 피곤해서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집에서 보냈다. 그렇게 눈이 녹으니 주말도 사르르 녹아서 월요일이 와버렸다. 그리고 귀여운 것들도 사라졌다.

눈도 인생도 참 덧없이 땅속에 스며들 줄 알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을. 20대 그리고 30대의 나에게 넌지시 말했으면 좋았겠다.


아직도 얼었던 눈이 마져 녹으면, 주말처럼 한 해가 가버리겠지. 하지만 어김없이 눈은 올 것이고, 그렇게 또 녹다 보면 시간은 흐를 테니까. 나쁘지는 않은 눈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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