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게시판에 애경사가 떴다. 신규 시절에는 몰랐던 고충이다. 직장 생활이 몇 년을 거듭해가니, 축하나 위로를 해줘야 할 사람과 접점이 많아졌다. 달력에 그렇게 결혼식만 적어도 주말 메모는 빼곡하다. 거기다 갑작스러운 애사에도 합하면, 매주 나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해야 했다.
물론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직접 가는 일은 적어진 것은 맞지만, 그래도 계좌로 봉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메모는 참 중요했다. 항상 타이밍이 있지 않던가? 직접 가서 축하를 혹은 위로를 해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봉투라도 제때 보내야 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
일단은 못 가면 축하 전화나 문자를 남겼다. 대부분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선배이자, 상사였다. 이럴 때 아니면 평소에는 연락이 뜸했을 상태였지만, 상투적이나마 대화에서 과거를 추억했다.
신규 시절에 함께 업무로 전화 통화했던 여린 직원이 결혼을 하고, 나와 함께 고생하던 동료와 상사가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 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체는 투덜 기리면서도 묘한 미소가 나왔다. 이유는 다들 이 돈 다시 돌려받으려면 결혼하라는 말을 해서랄까? 아니면 정말 주변에 사람이 없던 시작 지점에서 어느 사이에 이렇게 챙겨줄 사람이 많았는지 모를 헛웃음 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사람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은 직업은 사회적인 지원이라면, 마음을 주는 것은 결국 본인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애경사가 왔을 때 진정한 본인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느꼈다.
무연고 고독사를 한 사람의 장례식장을 상상해 본 적이 있던가? 아무도 나의 죽음과 결혼에 관심이 없는 인생. 그것이 설령 품앗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무관심은 상상만으로도 쓸쓸하다. 장례비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내 죽음이 마무리된다는 것은 너무 조촐한 인생의 마감 아닐지?
나는 결혼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그러한 축하를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를 포함해서 가족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기에 타인의 위로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타인의 애경사에 금요일마다 돈을 이체하고 있다. 그리고 되도록 직접 가서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원칙은 결혼은 동기 아니면 결혼 대상자 모두를 알면 간다. 그리고 애사는 되도록 꼭 가는 편이다. 그건 휴직을 했어도 지킨 신념이었는데, 못 갔을 때는 그 사람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다시금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참 사람 도리 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하고, 양심도 있어야 했다. 그것을 놓아 버리면, 참 사람은 외롭고 쓸쓸해진다. 아직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대충 살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려니, 돈이라도 벌어야 하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최소한 내가 뿌려 놓은 도리의 씨앗들이 위로와 추모로라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