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23
가을을 경계로 비가 내리면 겨울이 온다. 그건 도시의 계절보다 시골에서 더욱 빨리 산과 강의 온도로 절기를 체감한다. 오늘은 그렇게 떨어진 빗물이 들판을 적시고 있었다. 이미 시골은 각자의 집에서 겨울을 준비 중이다. 간혹은 김장을 위해서 분주하지만, 보통은 따뜻한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길거리가 조용하다. 그 와중에 비가 오더니 쌀쌀한 바람이 더운 공기를 밀어냈다. 역시나 온도의 체감은 이미 겨울이었다.
연말을 맞이해 나만의 작은 이벤트로 공모전 응모를 했다. 정말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이메일이 아닌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 작업이 수고롭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런 응모는 말이다, 그래도 꿈은 하나 남겨 두어야 하니까. 가능성이 없는 로또보다는 정성껏 다듬은 글을 담은 봉투를 보내기 위해서 덕분에 면사무소 앞에 우체국을 갔다.
그렇게 등기 우편을 보내고 나오다 보니, 추위에 웅크린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살이 찐 것일까? 털이 찐 것일까? 제법 덩치가 있어 보이는 다양한 무늬의 고양이 무리에 자연스럽게 손이 뻗어 갔다. 형제들은 아닌 친구들인지. 다들 다르게 생겼다. 각자 건물에 사는 녀석들이 단체로 사랑방을 만들었다. 신기하게 그 자리에 모여있는 것도 신기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길래 고양이들을 불러봤다.
“야옹~ ”
그러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우체국 옆 고양이들은 그 손길을 피하지 않고, 다가와 마주했다. 보기에도 제법 손이 탄 녀석들이었다. 아마도 우체국 옆에는 아동센터도 있었고, 길 건너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은 집사들이 사랑을 주었으니, 낯선 사람의 손길도 거부하지 않는 것이겠지. 먹을 것도 어찌나 줬을까. 길고양이라고 하기에는 다들 튼튼해 보였다.
그중에서도 고등어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얼굴을 문지른다.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는 것일 건데, 다 큰 녀석이 저러니 새끼들이 하는 애교와는 사뭇 다른 맛이 있었다. 한마디로 개냥이다. 생각 같아서는 목덜미를 훅 잡아서 한 마리 냥줍 하고 싶지만,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를 애타게 찾을 작은 집사들에게 미안해서 머리만 쓰다듬다가 돌아갔다.
봉투를 들고 나온 손이 부드러운 고양이 털 촉감이 남아 있었다. 조금은 추운 날씨에 손도 시릴 법한데, 어쩐지 장갑을 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순하게 나의 꿈을 위한 도전이 기특해서 그랬을지? 아니면 기분 좋게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길이 고와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다만 추운 겨울이 오지만, 마음까지는 춥지 않을 것 같았다.
섬진로에는 사람도 있고, 면사무소도 있고, 우체국도 있지만, 그 옆에는 고양이도 살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우체국에 자주 갈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