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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무한 리필은 그만 가자

명절에 내려온 친구와 남원 <돈궁>에서 삼겹살 먹기

by 이춘노

20대엔 친구와 내가 가던 곳이 일정했다. 일단 몇 만 원이 넘어서는 수준에서는 우정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보통은 무한리필 삼겹살을 먹었다. 초벌도 해주는 곳이어서 생각해 보니 먹는 속도가 빨랐다. 또 그런 식당은 어쩐지 손님이 많기도 했다. 덕분에 빠르게 또 주변 분위기에 소주는 취하게 마셨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자연스럽게 나가서 2차로 PC방이나 국수나 먹으러 갔던 것이 삼겹살의 기억이다.

역시 지나고 보니 추억이다. 붉고 하얀 생고기를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말이다. 손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빠른 테이블 회전을 위한 좀 질긴 초벌 삼겹살도 먹었는데, 이런 맛 좋은 고기를 느긋하게 먹는 것 자체가 여유겠지.

최근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코로나로 이동을 못 하는 시기도 있었다. 요즘은 각자의 일이 바쁘다 보니 얼굴 보기는 더욱 어려워서 명절이나 어렵게 시간을 내는 것 같다. 복직하고, 손이 느린 내가 명절 연휴에도 나와서 일을 해야 기한을 맞추는 것은 상관없었다. 다만 친구와 편안하게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어려워서야 사는 낙이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친구와 나는 오랜 지기답게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내가 직장을 갖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각자의 생활권에서는 모두 사주는 것이 룰이 되었다. 지난번에는 서울에서 거창하게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원래라면 회를 먹었을 것이다. 굽는 것도 귀찮고, 어쩐지 삼겹살을 먹자니 좀 부족해 보여서 말이다. 그렇지만 지난주에 이미 회를 거창하게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삼겹살을 골랐다.


<돈궁>이라는 식당은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다. 신규 시절이나 시청에서 회식을 하면 가끔 갔었고, 맛집이라는 소리는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다만 코로나 시기에 먹던 배민의 제육볶음이나 청국장이 맛있어서 배달이 아닌 직접 고기를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갔다.


솥뚜껑 모양에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두고, 기름이 내려가는 곳에 묵은지와 버섯, 양파가 자리했다. 생삼겹살이 불판에 눌어붙지 않게 보다 보면 기름 먹은 묵은지가 볶음 김치 맛을 내고 있었다.

물론 이미 사장님이 얼른 먹으라 주신 따끈한 전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역시 기름기가 들어가면 소주를 목으로 넘겨야 했다. 그게 알코올의 진리 같다.


엉성하게 잘라서 못 생긴 모양이지만, 쌈장에 파절이를 싸서 먹고는 고소하게 씹었다. 역시나 무한 리필의 푸석한 식감은 없었다. 육즙과 고소함이 삼겹살 답다는 생각을 미간으로 느끼게 했다.

돈이 없던 그 시절에는 그런 상차림에도 소주 서너 병은 마시던 우리였다. 물론 그때의 추억이 나쁘지는 않으나, 난 맛난 고기를 먹는 40대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래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좀 무섭다.


술잔을 따라주던 친구가 넌지시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참 무모했다고, 공부를 하겠다고 딱 몇 백 챙기고 올라간 그 시절에 대담했단다. 그건 나도 그 친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제육볶음에 또 한 잔 마시고, 마무리로 양념장이 시원한 국수로 입가심을 했다. 그렇게 친구와 몇 년 만에 먹었던 삼겹살이었다. 추억을 안주 삼아서 마시긴 해도, 맛은 지금이 역시 좋다.


친구와 시내를 걷다가 광한루도 지나갔다. 무료 개방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익숙한 이곳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잉어만 있던 곳에 원앙도 무리 지어 있었고, 못 보던 카페도 있었다. 또 당시에는 없던 길도 제법 있었지만, 이번에는 알던 길로 익숙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참 이기적이지만, 추억은 공유해도 차마 그 당시의 고생은 싫다. 맛은 지금이 더 좋은 삼겹살이 더 손이 가는 건 본능일까? 무한리필 삼겹살은 마음에만 두고, 앞으론 친구와 맛난 것만 먹으련다. 추억은 그저 소주 안주이지, 솔직히 다신 경험하기 싫은 고통이니까.

나름 잘 굽는다고 했는데, 대충 잘라서 아쉽다
국수에 마지막 해장
광한루 안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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