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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r 12. 2023

하루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 차 스피커에서는 usb에 저장된 2001년부터 2018년까지의 히트곡 모음이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중이다. 마지막이 2018년인 이유는 그 파일을 받은 것이 그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의 업데이트는 당시로 멈췄다. 아마도 그해에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우울한 동생을 위해서 담아준 파일이었기에 방랑 하면서 음악을 듣고, 차를 몰았다. 낮에는 일을 하면서, 밤에는 오지 않는 잠을 거친 운전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불안이라는 것이 내 머릿속에 가득할 무렵에는 차에서 자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거의 20년의 세월을 타고 흐르는 음악도 그런 미친 습관의 전주 같았다. 그냥 단순히 그렇게 살았다.

  30대의 방황은 참 볼품없었다. 도피라는 생각도 들었다. 꿈도 희망도 사라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자그마치 20년이다. 성인이라고 받은 민증에 사진이 흐릿할 만큼의 시간이 갔음에도 대학교 입학 무렵의 나와 서른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1년에 포지션의 <I LOVE YOU>라는 음악이 유행했었다. 아마도 정확히는 드라마 같았던 뮤직비디오가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변변한 편의점도 없던 시골에 허름한 노래방 브라운관 티브에서 나오던 이 뮤직비디오를 멍하니 바라보던, 갓 어른이 되려는 나는 한동안 서서 음악을 들었다. 추웠던 그 새벽에 나는 답답함에 뛰쳐나왔는데, 서른 중반에 나도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달리고 있었다.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난 술에도 의지했다. 제법 독한 술도 마셨고, 덕분에 병도 얻었다. 거칠게 나와 주변을 거부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려고 마음먹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도 줬고, 상처도 줬다. 두 번이라는 적지 않는 휴직 경험은 공무원 이력에도 커다란 난도질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감내하고, 복직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절대로 우울한 티를 내지 않겠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날은 오롯이 모든 것을 쏟아 내겠다고 말이다. 덕분인지 6개월을 버텨내고 있다. 최대한 나를 억누르고 있다. 필요하다면 약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또한 내가 받아 들어야 할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연습 중이다.

  타오르는 분노와 부정적 생각을 최대한 누르고 타이른다. 다만 그렇게 어둠을 가두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에도 퇴근길에는 몹시 서글프다. 뿌듯하긴 하지만, 그만큼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 씻고는 바로 맨바닥에 눕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내일을 조용히 맞이한다. 그런 6개월의 생활 속에서 어제부터 포지션의 음악이 자꾸 듣게 된다.


<하루>


<마지막 약속>


  누군가를 위해서 불러 주는 노래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2001년에 내가 들려주는 노래가 출근과 퇴근길을 함께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처럼 음악만 들으며 멍하니 있을 순 없었다. 당시에는 불안한 내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마음과 분노였다면, 지금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포기일까?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

  단순한 이 생활이 재미는 없으나, 불면증과 술이 찌든 우울한 얼굴보다는 나은 것 같다. 간혹은 책과 글로 스스로에게 선물도 주는 지금이 편하긴 하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잠깐의 균열에 스며드는 이 감정은 어쩌지 못하는 것도 인정하긴 해야겠지? 그렇게 묘한 감정의 틈을 오늘도 책과 글로 막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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