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Apr 06. 2023

남원 장날은 4일과 9일입니다

김진영 작가의 <제철 맞은 장날입니다>를 읽고

  남원이라는 곳은 소도시이다. 면적은 넓으나,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전형적인 시골 도시. 지금이야 마트가 곳곳에 생겼지만, 과거에는 장날이 되면 사람들이 몰렸다.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준 큼직한 달력에 4일과 9일이 포함된 날짜를 꼭 챙겨 봐야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밥상에 고기라도 혹은 생선이라도 구경하려면, 장날이나 돼야 먹을 수 있었다. 장터가 생기는 그곳에는 시골에서 나물과 채소를 챙겨 온 할머니들의 분주한 고무 바구니가 가득했다. 내륙임에도 비린내 가득한 생선도 얼음과 소금 위에 진열된 상태로 손님을 맞이했다. 그리고 어린 나를 위해서도 튀김이나 빵 혹은 간식거리로 함께 시끌시끌했다.


  지금도 장날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코로나 시국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아직 시골에서는 장날만큼은 골목길 가득한 노점으로 분주하다. 어린 시절에 아영에 사는 내 친구는 산에서 직접 채취한 버섯으로 장터에서 팔아서 용돈을 벌었다는 자랑을 들었다. 그만큼 장날은 누구에게나 서로의 이유를 가지고 암묵적으로 만나는 거래처였던 것이다.


  어릴 적에 난 부모님과 장날 구경을 하다가 토끼를 파는 노점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소심했던 나는 사달라는 말을 못 하고 보다가,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장날에 토끼 두 마리를 박스에 담아서 사 오셨다. 그때는 얼마나 기뻤던지. 하얀 토끼와 회색 토끼 두 마리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풀도 챙겨다 주고, 자라는 당근도 뽑아다 주곤 했다. 강아지는 항상 있었고, 고양이는 길에서 자주 마주치니 토끼라는 존재는 온전히 나의 친구 같았다.

  아마도 내 유일한 애완동물은 그 두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구 같았던 두 녀석이 죽고 나서는 장날에 대한 흥미도 함께 잃어버렸다. 그냥 노점에 채소와 나물만 가득한 비좁은 공간으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마트라는 편리한 시설이 생기고는 오히려 그날은 그 길을 피해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가끔은 친척들이 시장 구경을 원해서 따라기긴 했다. 아니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짐을 나를 때나 차를 몰고 갔다. 물론 그것도 정말 가끔이었다. 오히려 마트에서 몽땅 구매를 하고 편하게 집으로 가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팅녀가 시장통 순대국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해서 처음으로 시장에서 국밥을 먹었다. 일반 순대가 아니라 피순대였다. 뜻밖의 장소였지만, 의외로 소탈하게 식사를 했다. 그렇게 종종 나는 혼자서라도 시장 구석에 맛집을 찾아 배를 채우게 되었다. 할머니표 수제비집도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 먹게 된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전국에 오일장은 많다. 그리고 아무리 같아 보이는 풍경이라고 해도, 나름의 대표적인 무언가는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어서 장터가 생기는 것처럼 그곳에서도 맛을 탐닉하는 누군가의 입은 있을 테니까. 너무나 익숙하기에 몰랐지만, 제철 따라 장날에 음식을 챙겨 먹더라도 다녀야 할 곳은 이토록 많은데, 우린 너무 편하고 규격화된 것만 찾는 것은 아닐지?


  아마도 이런 장날도 점점 사라지고, 그 맛은 전국적인 통일된 무언가로 통합되겠지. 그것이 아쉬워서라도 나는  작가의 취재길을 따라서 장터 구경을 좀 더 해봐야겠다.  모든 장터가 추억이 되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나의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