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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그때 먹었던 그 칼제비

노량진 지하 식당 칼제비를 기억하시는 분?

by 이춘노

하늘에서 봄비가 내린다.

왜 이렇게 비가 오면 뜨끈한 국물이 땡기는지.


그래서 비가 오면 수제비를 챙겨 먹었다. 지갑에 돈이 제법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주머니에 돈 오천 원뿐인 시절에도 수제비는 먹고 싶었다. 사실 넉넉한 카드 한도가 있는 마흔에도 못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과거에 먹었던 음식. 지금은 사라진 음식점에서 파는 칼제비다.


20대 후반에 나는 노량진에 있었다. 학원과 고시원을 이어지는 골목길이 익숙한 주소 없는 주민이었다. 바로 고시원 반지하 105호에서 살던 시절이다. 한 끼 식사가 3,500원을 넘는 것이 사치였던 시기에 몸이 아프면 꼭 챙겨 먹었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바지락 칼제비였다.

혹은 감자수제비기도 했다.

노량진 육교를 지나서 왼쪽에 길게 늘어진 공무원 수험가 노량진 시장 안에 있는 지하 코너에 수제비와 칼국수로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메뉴 하나가 오천 원 안에서 해결되었다. 아마 둘이 가면, 수제비 하나에 비빔밥류를 하나 고르면 만 원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굳이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찾아와서 먹던 맛집이었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먹은 수제비만 백 그릇은 넘을 것이다. 내 노량진 수험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초밥집 접시처럼 쌓여버린 것이지만, 맛과 가격만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나에게는 감사한 곳이었다.


항상 수제비를 먹고는 바쁜 직원을 위해서, 먹은 그릇을 치우기 쉽게 담아 두고 자리를 뜨면서부터 같다. 다음부터 내 수제비 양이 점점 늘었다. 평소와는 다른 양에 기분 탓인가 했는데, 옆자리 사람을 보니 확실히 내 수제비 양이 많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사장님이 주방에 계실 때 내가 오면 양을 더 주시는구나. 감사한 마음에 배가 불러도 건더기를 다 먹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주변을 천천히 보고 있으니, 결식아동을 위해서 끼니를 챙겨주시던 사장님의 대화도 들렸다. 아마도 성실하게 교회를 다니시는 분 같았다. 싼 가격에 맛도 좋았고, 많이 팔아야 유지될 지하 식당에는 늘 항상 사람이 북적였다. 나도 그 맛에 길들여진 사람 중 하나였다.

서른이 넘어서 합격을 하고도 몇 해를 서울을 가면 그 식당을 찾았다. 옷을 입는 것으로는 아직 장수생인가 싶었겠지만, 나를 알아보시고는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셨던 사장님.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는 식당이 사라졌다.


아쉬움에 없는 줄 알면서도 몇 번을 더 찾아갔던 나는, 사진으로만 그 당시의 추억을 떠올린다.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참으로 푸짐했던 지하 식당. 작은 배려에 곱빼기로 정을 나눠주시던 사장님. 이제는 딱히 아쉬운 것 없는 주머니 사정에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비가 오면 못내 쓸쓸한 추억으로 남는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그 추억이 더 배고파지는 하루다.

추억이 허기지면, 참 이토록 그리운 모양이다.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넣고 비벼 먹기도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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