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Aug 26. 2023

휴직은 라면을 고민하게 한다

결국 휴직 때 라면만 먹었다

  "뭐 먹지?"


  최근 휴직한 동기 형이 단톡방에 물었다. 대부분의 휴직자들은 뭔가 거창한 먹거리를 꿈꾸지만, 실상은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이 라면이다. 그것은 독신인 사람도 그렇지만, 기혼자라고 크게 달리 질 것은 없다. 왜냐면 귀찮고,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따졌을 때, 라면만 한 것이 어디 있을까?


  처음에는 반찬을 시도해 보거나, 김치찌개나 볶음밥도 시도해 본다. 그러다 결국 자취생 모드로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라면은 기본 레시피를 따라서 몇 번 먹다가, 이내 질린다. 그리고 점차 다른 방식으로 라면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목적은 바뀌어서 가성비보다는 그 틀에서 변화에 욕심을 낸다.

  소박한 변화의 시도는 짜장라면이다. 배달 음식에서 자투리로 남은 서비스 메추리알을 재활용해 장식했다. 집에서도 라면 전문점 느낌을 살려보려고 마트에서 전용 그릇도 샀다. 흡사 파는 라면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에 나름 만족감을 느끼면 된 것이다.

  이내 다음에는 재료비는 생각하지 않는다. 명절에 친구도 초대해서 거창하게 회도 시켰다가 매운탕 대용으로 신라면에 굴을 넣어서 굴라면도 해봤다. 라면수프라는 익숙한 맛에 고급재료인 굴을 여러 번 씻고서 다이어트에 비양심적인 상태로 친구와 소주 한 병을 더 부르는 MSG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어느 날은 내가 처음으로 수능 백일주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함께 안주로 만들어 먹었던, 참치 라면도 반주 삼아서 홀짝홀짝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계절은 항상 뜨거운 국물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빔면을 골라서 영양가 있는 삶은 계란을 하나 남은 것을 반으로 잘라서 올려놓고는 만족을 하는 섬세함도 보였다. 어느 날은 만두가 남아서 만두 라면도 시도했다. 아니면 3인분에 9,900원의 부대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어서 극 사실주의적인 나트륨 폭탄을 미친 듯이 흡입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편의점에 신종 라면도 눈에 들어오면 매운 라면도 슬슬 도전했다. 보기에도 '나는 辛라면입니다'라는 모양의 라면도 먹었다.

  비빔면에 골뱅이도 넣어서 먹기도 했으며, 조개를 사서 해감한 상태로 멸치 칼국수도 매운탕에 남은 국물에 라면을 넣기도 했고, 짜파게티에 계란프라이나, 어묵라면까지 여러 시도를 했다.

  그만큼 휴직은 나만의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하는 어둡지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이토록 분식 콘셉트로 식사를 먹었던 것도 궁핍한 주머니 정도 있었으나, 사실은 흔하게 먹는 라면도 어디까지 해 먹을 수 있을지를 시험해 본다는 이유도 컸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찾는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찾고, 끌리는 도전적인 사람도 결국 어머니의 집밥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가장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그동안 나는 얼마만큼의 라면을 먹어 봤을까? 남들이 먹어봤다는 라면을 유튜브로 단순하게 맛있겠다는 말로 슬쩍 대리 만족을 하고, 집에 가서는 항상 먹던 그 라면만 먹는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난 주말을 앞두고 조금은 다른 나만의 라면을 먹기 위해서 시도해 보는 것을 해보면 어떨지? 마음이 허한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오늘은 혹시 어떤 라면을 드실 건가요?"


  그럼 나는?


  결국 나의 불금은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컵라면 하나였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제비 때문에 아파트가 부러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