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람에게 빚을 져라
함께 사는 세상, 상실은 부족한 사람의 결합
새로 발령받은 근무지에 옆 짝꿍은 미소가 밝다. 원래 이쁜 얼굴형에 피부 색조가 밝아서 그런가 싶지만, 나는 미모로 밝은 미소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격이 빛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어둡다 싶은 나도 기분 좋아지는데, 내 주변에 사람들은 나와 옆자리 짝꿍을 같이 보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뻔했다. 나름으로 상상하기에 흑과 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나와 그 직원의 나이 차이는 세 살 밖에 차이가 안 났다. 결국 나이의 여유는 아닐 것이다. 또 분명 나이가 들어도 미소의 주름이 곱다는 인상을 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유심히 보니 거절을 못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함께 해나가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참 부러운 성격이다. 그리고 그 옆 직원분은 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조건 긍정적 방향으로 업무 진행을 하고 있었다.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아도 놀 때 보면 그것도 아니다. 내가 7년의 직장 생활을 해보니, 흔히 사회생활 잘한다는 사람 중에 아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그건 바로 상대방에서 마음의 채권을 마음껏 뿌리는 사람이었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을 멘토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서 역시나 찾을 수 있는 것은 상대에게 채무감을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잊는다.
다시 말하지만, 보통의 사람인 나는 물욕도 있고, 쉽게 라면도 포기 못 하는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러한 채권을 뿌릴 여유는 없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채무가 있는 사람들이지 절대로 주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따라 하고 싶어도 그들은 40년 이상을 다양한 쿠폰을 모아 온 사람들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고 해도 보통의 경우라면 같은 입장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 사는 게 팍팍하다. 아파서 입원해도 누군가의 간호가 필요하다. 돈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그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우울함을 떨치려고 혼자 아무리 자기 암시를 하고, 아무리 걸어도 한계는 있다.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하듯이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빚을 져서라도 채워야 한다.
나도 그런 생각 때문에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은 사람을 만났다. 의미 없는 모임이나 그런저런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고마웠던 사람들과 이왕이면 술을 한잔하고, 아니면 식사나 커피를 마시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중이다. 물론 내가 보고 싶다고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안 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그건 빚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책임 아닐까? 마음으로 채권을 나누고도 불량 채권이니 포기해야지 하는 마음을 심어준 것은 아니었을지. 은행에 가면 많이 느끼지만, 빚을 얻는 것도 능력이다. 자신의 신용에 따라서 나의 빚을 얻는 금액과 이자가 달라진다. 아주 형편없으면 창구에서 거절당할 수 있다.
최근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밥을 사주신단다. 그냥 고생하는 아들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으셔서 그랬던 거 같은데, 이유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내 나이면 아이 한둘 낳아서 어머니는 손자녀 보실 연세에 아들 어린이날 밥을 사주셨다. 그날은 나도 기분 좋게 비싼 매운탕을 먹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지금은 빛이 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부모님에게는 그러한 존재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