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거울에서 나를 바라본다

상실을 인정하자

by 이춘노

면사무소 안내도 증명사진이 너무 오래되었다고 자주 오던 민원인이 이거 사기 아니냐고 웃으며 불평했다. 입사 전에 찍은 사진인데 그때보다 체중이 15kg이 불어서 그랬나 하고 다시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내 얼굴이 아니다. 급하게 찍어서 보정을 안 해줬나 싶었지만,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너무 엉망으로 나온 사진에 찍고도 서랍에 숨겨두고는 지갑 속에 사진을 하나씩 꺼내 봤다.


우선은 주민등록증 사진은 2000년 무렵 고등학교 시절에 찍었다. 그때는 종이 주민등록증에서 플라스틱으로 교체할 무렵이라서 별생각 없이 직원이 디지털카메라도 찍어준 그대로 사진을 썼다. 얼굴은 크지만 뿔테 안경이 어울려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004년 무렵에 제대 직전에 전역증을 만들려고 찍은 사진으로 시립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었다. 그 당시는 살이 쪄서 고민이었는데, 별다른 보정 없이도 말년 병장답지 않게 군기가 들어있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운전면허증 사진. 아까 말했던 입사 전에 증명사진은 정장도 없어서 사진관에서 대충 걸려있는 정장을 바지는 청바지로 입고 찍었다. 사진들을 쭉 펼쳐 놓고 보니 얼굴이 변해가는 것을 한 번에 느꼈다. 결국, 사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증거를 꺼내 놓고서야 인정했다.


사람이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인정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일하면서 객관적인 자료를 내가 보고 있는데도, 뻔하게 다른 주장을 하는 민원인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데, 늙어가는 내 얼굴을 사진사 탓을 했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남겼다는데,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서 솔직히 흘려들었다. 굳이 비참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살기에 나의 멘탈 보호가 소중하다는 생각이었다.


단순하게 조명이 좋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가 아니라 병원의 대형 거울에 비친 모습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한다. 아무리 보정을 해도 과거의 풋풋한 피부 색조를 가진 내 모습은 돌아오지 않는데, 막연하게 전철에서 잃어버린 분실물을 찾듯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분실물이 아니라 그냥 없어지고 있지만 낡아가고 있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대체 미래의 말을 할 수가 없다. 태어나면서 늙어가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결국 그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진리를 40살이 다 되어가도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조금 그것을 붙잡아 보겠다고 안 바르던 화장품도 바르고, 다이어트도 하는데 티도 나지 않는다.


내가 그토록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노화인가? 아니면 40살이 되도록 그것과 맞바꾼 나의 인생이 너무 초라해서일까? 나는 요즘은 후자 쪽에 손을 들어준다. 진짜 무서웠던 것은 이룬 것도 없는데, 이런 몸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지가 상상할수록 두렵기만 했던 것 같다. 돌이킬 수 없는 젊음과 일상. 유일한 나의 혈육의 상실이 왔거나 잃어가는 와중에, 내가 과연 나이에 맞게 삶을 살아갈 자신이 있던지를 어디 가서 묻고 싶어서 그리도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이가 40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삶에 있어서 자기가 먹고사는 방법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정도로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에게 단점만 보이지만, 장점이 있으니 세상에서 쿠폰을 얻어서 사는 것이다. 그것도 능력임이 틀림없지만, 나에게 야박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인정을 해보니 있는 것이라도 고쳐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남은 것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교환비 높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사진을 찍고 싶어 졌다. 조금은 40대와 어울리는 인상으로 다시 찍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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