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을 벗어나도
병원과 다르지 않다

병원과 세상의 닮은 점

by 이춘노

누구나 질병이 있다. 질병의 종류는 보험의 약관으로 나열해도 많은데, 걸려버린 질병이 아니더라도 차후에 걸릴 수 있는 질병만으로도 우리는 움츠린다.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는 영화에서 보던 마스크 쓰는 세상을 내 생에서 보았고, 불확실한 가정법에 세상은 크게 흔들렸다. 불안도 공감에 일종이라면 공감은 질병과 같다. 이미 걸려버린 질병에 고통받는 순간도 공감이고, 그러한 것이 걱정되는 순간도 공감이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원 회전문을 밀어내고 밖을 나간 나는 병원 아닌 세상에서도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똑같이 느꼈다. 내 주변을 감싸는 환경이 모두 병원체 같았다. 그리고 내 인생이 그랬지만, 나 말고도 그런 인생은 인류의 개체 수 이상으로 많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내 주변이다.


내 인생과 병원이 다른가? 그럼 나의 인생과 당신의 인생은 또 얼마나 다를까? 처음으로 남에게 보이는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공감이었다. 다만 돈을 벌어주는 글이나 마약처럼 판타지를 보여주는 글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가 표현하는 글은 오로지 내면에 숨겨둔 불편한 진실이었다. 공감이라는 것을 위해서는 내보여야 하는 개인적 이야기에 얼마나 지갑을 열어줄지 모르는 미상의 독자들에게 난 내 경험과 생각을 떠올렸다. 단순한 내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기록하는 건 현재도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렇게 누구나 가진 비밀이 있듯이, 나 또한 존경할 사람은 아니기에 나를 드러내는 작업은 글을 쓰는 내내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5년 전, 처음 입원하고서 병원 밥이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에는 나가는 것이 슬슬 무서웠다. 지금은 내가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일하면서 느끼는 고통에 비해서는 차라리 병실에서 있는 편이 더 안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딱히 질병이라는 전염성이 확인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병원을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어쩐지 나란 사람은 병원을 나가도 매일 먹는 끼니마다 병원 식사였다. 게다가 힐링이라는 명목으로 나가서 쓰는 돈으로 힘들어하다가 결국에는 자는 방도 병실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질병이라도 있다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을 텐데. 마땅한 질병명은 없는데, 질환은 늘어만 났다. 보통은 그런 경우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벅차고 힘들다 하기에는 세상이라는 병원에는 죽음밖에 퇴원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은 병원을 찾았다. 찾다가 보면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찾으라는 조언과 함께 약간의 약물을 처방받았다. 20대에는 건강에 대해서 그토록 무관심했는데, 지금 와서 아픈 게 눈에 보이고 병원을 찾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뭔가가 치유의 따뜻한 느낌이라 하기엔 온통 무서운 도구들뿐인데…. 그러한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나의 인생과 병원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맞는 것일까? 그렇게 아픈 인생을 치료하지 않은 나에게 물었다.

“왜 아픈 너를 치료하지 않았니?”


“...”


할 말이 없던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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