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심장은 원무과다
하루는 아버지 병원비 문제로 병원 원무과를 갔다. 유일하게 병원 중에서 병원 같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인생이 결정되었다. 퇴원하려고 해도 원무과에서 진료비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퇴원도 못 했다. 병원도 결국에는 초록빛 돈을 벌지만 돈 앞에서는 인정이 없다.
간혹 돈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면 혈액과도 같고, 귀엽게 표현하면 ‘참 잘했어요, 쿠폰’ 같은 느낌을 떠올린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데 필요한 ‘인생 쿠폰’. 간혹 부모님이 뭉치로 남긴 쿠폰이나 남을 속여서 쿠폰을 갖는 사람들 때문에 존재의 유용성에 의문을 품지만, 지금까지 유지되는 걸 보면 자본주의 속 돈도 인생 쿠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모두 다 그 쿠폰을 받기 위해서 살아간다. 내가 고민하는 여러 가지 문제나 질병이 생겼던 대부분은 이러한 쿠폰을 얻기 위한 혹은 쿠폰이 없어서 생긴 문제들이다. 확실히 많은 쿠폰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게 편하긴 하다.
그런데 그 쿠폰을 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능력이 꼭 필요하다. 능력은 가치로 평가되어서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서 쿠폰을 받는 수가 달라진다. 그런 세상이 너무 분한가? 미안하지만 분하다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변명해도 그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러워할 것도 없다. 너무 위급하면 수혈을 받듯이 사회가 쿠폰을 주며 기회를 주기도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그렇게 복지가 서툴거나 가난한 사람이 죽을 만큼 힘든 곳이라 하기엔 기본 쿠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이다.
문제는 결국 그러한 쿠폰을 대하는 자세 아닐까? 젊음을 바꿔서 나의 시간을 바꾼 쿠폰의 가치가 너무 적은가? 그렇다면 그 젊음의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사용했는지 떠올린다.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정말 그렇게 맹목적 투자를 했던가? 솔직히 나는 부끄러워서 당시를 회상하는 게 안타깝다.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정신 차려!’하고 뒤통수를 한 대 날리고 싶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까워서 지나가는 젊음을 더 붙잡고 싶다. 그러다 잡을 수 없는 그것에 혼자 화를 내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분노의 먹방을 혼자 찍다가 결국 살만 쪘다. 그리고 병원을 또 찾는다.
이제는 내가 받는 쿠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라면을 먹듯이 말이다. 요리법 대로만 하면 실패 없이 한 끼를 때우지만, 나만의 특별한 라면을 먹고 싶다. 면을 넣고 청양고추를 가위로 투박하게 잘라 넣고, 고춧가루도 한 숟가락 넣는다. 매운 라면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이다. 나는 맛있게 먹는다. 다음에는 순한 계란 하나 넣은 라면도 먹고 싶다.
쿠폰도 내 식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어차피 벌 수 없는 것이 생각나고 부럽지만 일단 접고, 가지고 있는 쿠폰을 내식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책을 사기 위한 한 장, 라면을 먹기 위한 한 장, 부모님을 위한 또 한 장씩 나누다 보면 내가 이걸 얻기 위한 행위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는다. 나의 일이 조금은 나답다고 생각된다.
사회 영향력이 거의 없는 나는 참 잘했다는 쿠폰은 많이 얻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있는 쿠폰을 알뜰하게 사용해야 한다. 젊음을 팔아서 귀하게 얻은 쿠폰을 남은 날을 위해 계산한다. 남은 쿠폰을 재테크 계획을 세우니, 쓰임이 빠듯하다. 자기 합리화 회피 일지는 모르지만, 돈의 노예는 되기 싫다. 개수를 늘리지 못할 바에는 그나마 쿠폰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 그것이 아픈 내가 살아가는 돈을 대하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