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인체도를 보며

인정, 행동, 등가교환

by 이춘노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방문하니 원장님 뒤편에 묘하게 생긴 인체도가 보였다. 달마도를 반쯤 잘라서 머리와 몸통만 있는데, 안에 한자로 오장육부의 위치와 명칭을 써놓았다. 나중에 책에서 보니 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라는 인체 해부도였다. 한의학을 배운 것도 아니라 허준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책을 보기 위한 안내 지도 같았다.

아마 어떠한 학문을 하든지. 비슷한 유형의 이론은 다 존재하는 것 같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배우면서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고, 그 과정을 안에서 유기적인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제도들이 인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예산을 사용할 때 수입과 지출의 결과가 상이하면 탈이 났다. 그것을 떠나서 내 몸뚱이도 병원을 다녀보니 먹고 움직이고 싸는 게 문제 될 때 아프니, 인체도가 말하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우리가 병원이라는 큰 틀로 본다면 치료과목은 세부적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분야마다 우리의 인체 해부도에 나오는 오장육부를 치료하고 보이지 않는 정신까지도 치료한다. 다른 것은 다 멀쩡한데, 간이 안 좋아서 사람은 아프고 죽기도 하고, 육체는 건강한데 마음이 아파서 죽기도 한다. 병원을 보면 세상의 이치가 인체와 같고, 인생도 그것과 같다면 우리의 인생은 병원에서 고쳐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만 보면 병원은 늙고 병든 몸을 치료를 해주는 곳이지. 다시 만들어주는 공간은 아니다. 애초에 잃었던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유지하기도 어렵다. 단지 병원은 나의 젊음을 돌려줄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몸이 아픈 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가기는 시간이 걸리거나 돌아갈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 곳이다. 그런데도 병원을 가야 하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한 의문을 품고서 가능한 책을 많이 읽었고, 다양한 해법을 봤지만, 생각도 해법도 너무 다양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적인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인정’


그렇게 많은 책과 조언에서 그 단어가 나온 이유는 그것이 어렵지만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일 것이다. 인정한다는 그것은 결국 현재의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본다는 뜻이다. 치료를 위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과정을 거치고 최종 진단을 내리는 의사도 과학자처럼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진단과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치료의 방법에 대해서는 참 내용이 다양하다. 대부분은 종교의 정신적 구원으로 주변에 모든 죄악을 신께 털어놓는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의지할 곳이 있다는 점은 인간에게 매력적이다. 아니면 법륜 스님처럼 깊은 수양을 통해서 득도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종교도 믿지 않고, 가만히 수양하면서 깨달음을 얻을 만큼의 시간도 내어주기 쉽지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가벼운 엉덩이와 얇은 귀가 속세에 물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불과 오늘도 오전에는 체중을 체크하면서 절대로 라면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밤에 유튜브라면 먹방을 시청하고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24시간도 못 참고 라면을 먹는데, 무슨 정신 수양을 하겠는가? 그래도 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도해봤다.


‘포기’


그래,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모든 속박과 고통을 인정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포기하라는 말을 쉽게 던진다. 그럼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나? 라면을 포기해야 하나? 살을 빼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어느 것에 방점을 두더라도 난 잃을 것이 많다. 게다가 부모님이라는 존재, 삶이라는 큰 인생 숙제 속에서 포기는 세상도 나도 쉽게 용납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한 어떠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어른이가 되어서 이해만 했다.


결국, 나를 인정했다는 전제로 내가 얻은 결론은 ‘행동’과 ‘등가교환’이었다. 행동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우울증이라는 상태에서는 몸을 움직이라는 말을 듣고 무작정 걷기만 했다. 평소에 걷기는 자신 있었는데, 90kg 몸으로 조금만 걸어도 몸에 무리가 갔다. 이미 예전 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걸었다. 걷다 보니 살이 빠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포기했는가? 솔직히 라면은 포기하지 못했다. 줄이긴 했지만, 지금도 유튜브를 보고, 라면을 먹었다. 내가 포기한 것은 시간이었다. 10km를 걷기 위해서 내가 쏟은 2시간이라는 시간을 포기하고 운동을 했다. 그러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두 시간을 투자해서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라면을 끊을까? 말했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라면은 절대 포기 못 하겠다. 나의 2시간이라는 젊음을 포기하며 얻은 하루 영 점 몇 그램의 몸무게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에 또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등가교환’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사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처음 들었는데, 연금술 용어였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뜻인데, 심오하게 들리지만,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게 보니 내 2시간이 좀 아까웠다. 무작정 걷기는 너무 교환비가 맞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 2시간은 생각을 깊게 하고, 라디오와 오디오북을 들으며 걸었다. 그제야 걸을 맛이 났다. 걸어도 손해 보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나의 나머지 22시간은 제대로 등가교환이 되었나? 나의 과거의 인생이 제대로 등가교환되었는지? 모든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나의 아픈 몸과 마음은 또 나의 젊음은 무엇과 교환되었는가?’

인체도를 바라보며 먹고, 움직이고, 싸는 것이 잘못되었을 때 아프다고 한다면, 나는 그 행동에 교환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꽤 많이 소진하고 나서 행동하고서 포기한 것과 얻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각났다. 40살이 가까워져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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