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바라보며 든 생각
병원에서 밤을 보내면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에 기분이 울적하다. 병원 건물 1층에서 접수를 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없고, 직원들도 다 퇴근을 하고서 각 층에는 당직 근무자밖에 없고, 병문안도 더는 없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어디서나 씻기만 하면 되는 처지에 양치하고 세수를 하고는 1층 로비에 긴 의자에 몸을 걸쳤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치료를 받는 중에는 정확히 나의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환자실 보호자를 위한 대기실도 사실 없는 곳이 더 많다. 최근에 병원에서 보니 그러한 공간은 없고 의자만 가득했다. 그것도 눕지 못하도록 팔걸이가 되어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든지. 근처 숙소를 잡고 다니지 않고서는 대기도 못 할 거 같았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차도 없었고, 집에서 가져온 이불과 몇 가지 짐을 공동 사용하는 대기실에서 두고 나온 터라 지갑만 빼고는 몸에 지닐 일이 없었다. 12월이 넘어서자 깜깜했던 1층 로비도 트리를 장식하고 불을 켜 놓아서 환하게 빛이 났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청바지에 오리털 파카를 걸치고 왔다 갔다 하는 나는 누가 봐도 노숙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나마 그렇게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30대를 맞이하는 내가 왜 이렇게 가진 것이 없는 걸까?’
주머니에 돈은 없는데, 유일하게 의지하는 가족인 부모님도 편찮으신 상황에서 너무 가혹한 삶이 아닌지를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 이젠 아픈 건 너무 싫었다. 그리고 내가 힘이 있으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진로도 최대한 낮춰서 준비했고, 시간이 흘렀다.
10년이 지나서 다시금 병원 로비에 앉아서 500원 정도 하는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가 수술을 마치고서 차마 집에는 가지 못하고, 어머니는 환자 침대에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보호자로 간이침대에 누워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시간 반 거리에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돈을 벌고, 이제는 병원비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20대에 바랬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젊음을 잃었고, 전보다 삶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질병도 늘었다. 숨기고 싶은 병이 얼굴에 드러날 만큼 자제력도 잃어갔다. 게다가 부모님의 건강은 약이 없으면 지탱이 안 될 만큼 와버렸다. 너무나 소중했던 과거의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게 분실된 느낌에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돈을 모아봐야 집을 사거나 결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다는 장담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포기를 하는 게 답이라는 말이 술 한잔을 하면서 매번 하는 말들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포기 못 하고, 강제 효도도 버겁다.
병원에서 밤을 보내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내가 이렇게 잃어가는 가운데 과연 살아야 하는지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러한 고민을 지금, 이 병원에서는 과연 고쳐 줄 수 있는지 잠을 자는 병원을 깨워서 묻고 싶었다.
‘진짜로 묻고 싶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니?’
자판기를 분명 설탕 커피를 눌렀는데, 블랙인지 그날은 커피가 너무 쓰다. 차라리 밀크커피를 먹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