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의 무기력함
퇴근하면서 내가 일하는 면으로 구급차가 지나가면 덜컥 겁이 났다. 적어도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는 내가 있는 공간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 죽거나 다칠 때 나타나는 그 차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나를 긴장시켰다.
사회복지 업무를 하면서도 응급실을 많이 찾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 문제로 제법 응급실을 갔다. 연락받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피를 흘리건 다쳤건 누워있는 가족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 더구나 그곳은 병원에서도 야생으로 통하는 공간이다. 술을 먹고 다친 사람부터 갑자기 심장이 안 뛰는 사람이나 고열로 어쩔 줄 몰라 달려온 다양한 사람들이 바쁘게 치료받는 곳이기 때문에 의자도 없고, 짐을 놔둘 곳도 없고, 의사와 간호사의 친절함도 기대하기는 힘든 곳이다. 때에 따라서는 다음날 입원을 위해서 새벽까지 대기해야 하는 예도 있어서 바쁜 와중에 냉정함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계속 환자가 온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서로의 불만에 화를 내다가 싸움도 났다. 도대체 환자복을 안 입으니 누가 환자고 보호자 인지도 모르겠고, 의사도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질병의 날 것이 그대로 오는 곳이기에 구토와 피가 넘쳤다. 이미 오물로 공기는 역한 냄새로 가득하지만, 그걸 따질 정신이 없다. 여러 환자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무관심 속에서 의자도 없이 나는 제법 오랜 시간을 장승처럼 서 있게 된다. 해방이라고는 입원뿐이다. 만약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분명 병실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 응급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은 응급실을 벗어났다. 병실에 있다가 갑갑하고 따분할 때는 아무 상관도 없이 응급실 앞에서 입구를 지켜봤다. 큰 병원이면 늦은 밤에 더 요란하게 들어가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신기하게 자신보다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지만, 한편으로 과거에 내가 저랬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며 위안을 얻었다. 부러워서 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지금 저런 상황은 아님에 감사하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도 구급차를 보면 적응이 안 된다. 심장이 떨린다. 단순히 지금은 그러하지 않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에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까? 지금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자신에게 한 번 혼내주려고 일부러 이렇게 응급실행 승차권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러한 순간이면 적어도 나는 지금이 좀 나아 보여서 한숨을 돌린다. 이것이 종교적 윤리나 철학적으로 평가받을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생각으로는 내가 인간답다고 느끼는 몇 안 되는 순간이라서 숨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