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기 위한 삶의 태도
대학 병원을 가서 일단 검사를 하려면 결제가 필요하다. 영수증에 빼곡한 항목 속, 수납 바코드가 있어야 검사가 진행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건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하면 상상만으로도 참 서럽다. 그런데 난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12년 전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서 들어가는 돈은 생각보다 부담이 컸다. 중환자실 처치 비용은 하루가 지나면 몇십만 원이 올라가는 가운데 의사의 답변은 말끝이 흐렸다. 명확하게 좋아질 기약도 없었다. 아버지의 회복을 바랐던 것은 혹시 아버지 건강보다, 그만큼 빨리 저 중환자실을 나오시는 게 경제적이었기 때문은 아닐지 자책하면서도,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용품을 사다 보면 통장 잔액의 불안이 엄습했다.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중간중간 병원비가 얼마 인지 확인했다.
그래도 감사하게 우리나라 의료급여 체계와 복지제도는 동아줄처럼 우리 가족을 도왔다. 내가 전혀 사회복지와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사회복지공무원이 된 건 그러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이었을까? 나와 같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나름의 행복을 느끼리라 생각했던 오만?
그래서 나는 지금이 너무 힘들다. 내가 기존에 꿈꾸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했고,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되면서 현실을 부정했다. 솔직히 내 일이 결국은 살기 위한 직업이었다는 점을 숨기고 싶었다.
사회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묘한 선입견이 있다. 착한 사람, 양보하는 사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칭하며 이것저것 요구하고 가끔은 무리한 상황에서 떼를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상은 칭찬에 인색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법의 책임과 더불어 직업윤리까지 더해서 말이다. 묘하게 병원을 보면서 나를 떠올렸다. 특히나 간호사를 보면서는 내가 일하는 업무가 겹쳐 보였다.
보통 간호사에게 친절을 요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한 항목에서 이뤄진다. 가만히 병실에 누워서 나의 24시간을 담당하는 간호사를 본인 기분으로 평가하지만, 그들은 하루 3교대를 하며 밤낮으로 일을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돈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뿐이다. 크게는 각종 값비싼 검사 장비의 발전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이윤을 위해서 사람들이 개발하고 장비를 사서 검사를 해주는 것이다.
본질은 이익이다. 돈이 없어서 서럽지만, 그것이 병원 탓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설움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가 있고, 복지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병원 탓을 하는 사람들은 성형외과에 몰리는 의사 지망생들을 보면서 혀를 차면서도 본인은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심리와 같다. 그리고 모두가 사회복지를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 업무는 맡고 싶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만약 각자가 버는 돈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적어도 병원은 초록색이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그러한 행위로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어서 이윤을 챙긴다 해도 그것과 바꾼 세상 모든 사람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하면, 등가교환이라고 해도 손해는 안 볼 것 같다. 아마도 거기에 세상을 위한 본인의 투철한 직업 정신만 있다면 차고 넘치는 가치를 남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생각해봤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기엔 지금의 업무가 너무 힘들다. 나의 시간과 인생을 교환해서 얻은 것이 단순한 돈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토록 마음이 힘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직업으로 단순히 돈만 교환하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과 교환한 돈도 그런 돈을 쥐여주는 직업에도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인생에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의미 부여마저 없다면 너무 못 견딜 테니까. 스스로 돈의 색을 위해서 의미를 불어넣기로 했다. 그리고 상상한다. 과연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돈은 무슨 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