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은 아프고 상실한다
평소에 너무 피곤해서 영양제를 먹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5만 원짜리 영양주사도 돈을 신경 쓰지 않고 챙겨 맞는다. 라면도 줄이고, 체중 감량을 위해서라도 차를 놓고 최대한 걷는 습관을 실천했다. 그렇게 살이 1~2kg이 빠지니 기분이 좋았던 때. 어금니가 시렸다. 평소에 말썽이 많았던 내 치아 구조로 인한 치통과 잇몸 염증은 회복을 위해서 달리던 내 몸에 정지 신호를 보냈다. 나름 1년에 한 번은 구강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의사는 충치 치료와 더불어서 신경치료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치과보다 치아를 살리는 원장님 성향을 알기에 믿고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나의 왼쪽 윗 어금니는 드릴 같은 기계로 구멍을 뚫고, 신경을 죽이고, 죽은 신경을 다 긁어내는 작업 후에 충전물을 채우고, 이쁘게 금니로 포장될 것이다. 이 정도 순서는 인터넷을 보면 나오는데, 치아에 전해지는 고통보다는 입을 크게 벌리고 10분은 넘게 있어야 하는 상황이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치과 치료는 5주 동안 치과를 7번은 가야 마무리되었다. 어금니 하나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문제가 없다면 좋겠지만, 나의 어금니는 아직 3개나 더 남았다.
매끈하게 생긴 새로운 어금니는 음식을 먹다가 양치를 하다가 혀끝이 지나면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사랑니는 그다지 필요 없는 치아라서 뽑고 나서도 고통에 대한 두려움만 극복하면 시원했는데 어금니는 그게 아니다. 슬픈 것은 나름대로 건강에 신경을 써도 피치 못하게 내가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병원을 오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노인도 많고, 아이가 많다. 하지만 작든 크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잠깐의 몸살감기로 병원을 찾지 않거나 병원을 너무 가기 싫어서 오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은 아프다. 결국, 병원은 오게 될 것이다. 스스로 찾아서 오는 예도 있고 강제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피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꼭 가야 하는 곳은 세상에 많다. 우선은 돈을 벌어야 생활을 하기에 직장을 가야 하고, 뭔가를 먹어야 하기에 마트도 가고 식당도 간다. 그리고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아무리 멀리 있어도 집에도 가야 한다. 청첩장이 오면 가까운 지인이라면 서울이라도 가서 축하해준다. 물론 부고를 접하고는 결혼식보다는 챙겨서 가는 편이다.
아마도 장례식에서 누군가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제삼자 관점에서 상대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대를 바라보며 나는 형식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왜 슬펐던가? 남보다 나아질 것도, 부러워할 것도, 힘들 것도 없는 순간을 위해 멀리 있는 길을 달려간 이유. 아마 상대가 느끼는 상실감의 위로도 있지만, 이면에는 나 또한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챙겨가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었다.
사람은 어차피 아프고, 상실해 간다. 필연이라는 말이 꼭 들어갈 만큼 당연한 말에서 우리가 우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깊이 생각하고 내린 나의 결론은 단순한 안타까움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자책감 아닐지. 그리고 과거에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짙은 아쉬움이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어금니를 치료하면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가는 이유는 상실을 확정받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연장하기 위해서 간다고 말이다. 돈이 있어서 금니를 씌운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이라면, 참 다행이다. 미래의 나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상실 같아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린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가기 싫은 모든 장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