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Oct 02. 2023

골골거려도 세탁은 해야지

명절에 묵은 집안일을 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명절 연휴의 시작 전날 오후부터 몸이 영 좋지 않았다는 것은 기침소리로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걱정을 했지만, 난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6일이나 쉴 수 있으니 그 사이에 아파서 다행이죠."


  "콜록콜록...."


  그렇게 고얀 언사가 씨가 되어서 난 그날 저녁부터 심한 기침과 열로 고생했다. 그래도 남에게는 피해는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지막날에는 코로나 자가 검사를 했으나, 난 그냥 독감인 걸로 추측되었다.


  목요일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감기약만 몽땅 샀던 것 말고는 기억이 없다. 추석 당일에도 부모님께 인사만 하고 바로 돌아왔다. 물론 부모님 상황도 안 좋았으나,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셋째 날은 평생 친구와의 고향 방문 축하 약속도 미루고, 넷째 날은 미리 약속해 둔 남원 투어를 하겠다는 친한 동생 약속도 취소했다. 중간에 약국에 갔고, 거의 원룸방에서 기력이 좀 있으면 책을 읽고 아니면 잠을 잤다. 그리고 나니 이불이 말이 아니다. 느 순간 냉장고도 먹을 것이 없었다.


  '아재'


  내 에서 드디어 아재 냄새가 나는 듯했다. 땀이 흐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흐른 땀을 다 품은 이불은 죄가 없다.

 

  6일이라는 긴 연휴를 기대하고 많은 것을 계획했을 사람들에게는 참 기가 막힌 일이겠지만, 난 6일 동안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혼자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아팠다는 특수한 상황이기에 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삶이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 또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분명 회복이라는 시간을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후회는 없다. 또 그 사이에 글도 쓰고, 책도 두권 넘게 읽었지 않던가?

  다만 이제는 원상복구를 해야 할 시간이라서 모처럼 셀프세탁소에 왔다. 땀으로 고생했을 이불에게 손해배상은 해야 하지 않던가? 인 잘못 만난 이불에게 사죄의 의미로 세탁을 했다.


  오늘은 너그럽게 바운스라는 섬유유연제를 여러 장 넣었다. 그리고 세탁도 상위 코스로 시작했으며, 건조기도 바짝 마르게 시간도 넉넉하게 잡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나는 세탁소에 마련된 공간에서 글을 남겨본다. 나의 추석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이제 10월을 시작한다고 말이다.  

  아무리 골골거려도 사람은 결국 내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지 않던가? 열심히 돌아가는 건조기를 보면서 내 인생도 그렇게 돌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어에 바람 빠진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