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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an 02. 2024

포항 영일대에서 조개구이를 먹은 이야기

포항 영일대 <마당집>에서 조개구이를 먹다

  어릴 적에 먹었던 조개구이는 일단 목장갑을 끼고 손에는 도구가 있었다. 한 겨울에 광명시청을 넘어가는 어느 고개에서 연탄불에 먹었던 조개구이의 맛은 짰지만 색다르고, 옹기종기 모여서 따뜻했다.

  25년은 넘었을 이야기다. 아직은 우리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친척 어른도 젊은 부모였을 시기였으니까. 그때의 조개구이와는 다른 모습으로 마주한 현대식 조개구이는 맛은 화려하다.


  솔직히 종류도 다양하고, 먹기도 편하다. 일단은 연탄불도 아니거니와 목장갑도 없이 젓가락으로 쉽게 먹을 수 있다. 기호에 따라서 치즈도 뿌려 놓고는 이른바 향 좋은 술안주로 딱이다.

  납작한 가리비와 키조개도 딱 먹기 좋은 상태로 날름 속살을 빼먹는다. 껍질이 불판이 되어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조개와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소주 한 잔이면 행복은 서너 배로 증가할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25년 전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좋아진 이 시기에도 목장갑을 끼고서 연탄불에 의지해서 조개 하나하나를 까먹던 그 순간이 술잔을 넘기는 내내 머릿속에 흘렀다.

 

  비싸진 물가와 적어진 양과 나의 나이 탓으로 거만해진 혓바닥이 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그 시절에 나는, 적어도 조개를 먹겠다는 일념과 추운 날에 연탄불이 따뜻했다는 소박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 아닐지. 훌쩍 커버린 내 몸과 왜소해진 부모님의 모습에서 먹으면서도 짠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조개구이는 맛있으나. 결국 추억이 더 맛있었던 하루였다. 그리고 마음도 약해졌기에 그리웠던 그런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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