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Dec 26. 2023

생고기는 씹을수록 달다

순창 <순창 물통골 한우마을>에서 생고기와 육회비빔밥을 먹다

  "생비요? 익비요?"


  보통 한우 전문점에서 듣는 단어다. 한마디로 생고기 비빔밥이냐? 아니면 익힌 고기 비빔밥이냐? 는 말인데. 물론 대부분 비를 먹는다. 그러나 고기가 붉은빛이 나는데, 그냥 먹는 것이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생각이다.


  나 또한 그랬다. 채소도 아니고, 생선을 날로 먹는 것도 어른이 다 되어서부터였다. 한데 육고기를 날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다. 육회비빔밥을 잘하는 곳에서 서비스로 주는 선지를 보면 입맛을 다시는 것은 꽤 익숙하다. 그리고 소를 잡는 날이라는 운수 좋은 때는 육사시미를 먹기도 했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고기 잡는 날이라서 생고기를 원 없이 먹었다.


  순창 톨게이트를 나오면, 순창의료원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물통골>이라는 곳에 한우를 파는 음식점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도 넓은 편인데, 점심 무렵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테트리스하듯이 차를 주차해야 했다. 이른바 소문난 맛집이었다.


  항상 대기 인원이 있었다. 그리고 기업형 음식점답게 신속하고, 깔끔한 것이 딱 손님을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부모님과 함께 오면 좋을 것 같고, 가까운 사람과 오면 대접하는 분위기가 들어서 서로가 만족할 것 같다. 정육식당처럼 사 와서 먹어도 좋고, 메뉴에 있는 육회 비빔밥이나 각종 탕도 식사처럼 먹기 좋은 곳이다.


  일단 메뉴에 붉은 색상이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왜 하필이면 맛있는 것들은 다 붉은색이 많을까? 색에서 오는 반칙 같은 맛이 오묘한 나물과 밥을 섞어도 다시금 붉은 고추장을 담뿍 넣어서 침샘을 자극한다.

  거기에 소 잡는 날이라서 먹을 수 있던 맛있는 생고기는 기름장과 양념장으로 단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소주를 생각나게 했다. 마도 소주의 시원함은 모든 안주를 부르는 맛이겠지만, 생고기에서 오는 묘한 맛이 주는 진득함엔 그만한 술도 없다.


  신기하게 생고기는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익숙하지 않은 맛임에도 전투적으로 생고기를 입에 넣어서 오물오물 씹었다. 원시인들이 이러한 느낌으로 식사를 했을까? 몸이 허하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 잘 먹은 몸이지만, 자꾸 붉은 맛을 탐닉했다. 그러다 맑은 선짓국에 후루룩 목을 적신다. 담백한 기름진 국물이 다시금 생고기를 원했다. 간의 기본적인 본능인지. 붉은빛이 감도는 고기를 허겁지겁 먹었다.

  결국은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한 접시를 비웠다. 더불어서 국물을 가득 담은 냄비도 비웠다. 주변에서 한 무리의 원시인 집단이라고 놀렸다 해도 뭐라 반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역시나 나는 운이 좋았다. 보통의 붉은 고추장에 밥을 비빌 것이, 붉은 육회가 들어갔고, 더 두툼한 생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었으니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생고기를 먹지 못했다면, 난 앞선 질문에 '익비'를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운이 맛있게 좋았던 하루를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참 다행이다. 원시인 같은 본능에 충실했던 내 입맛에 그리고 소 잡는 날이라서 내게 준 다른 맛을 느끼게 해 준 오늘도.

이전 09화 국수가 먹고 싶다면 담양으로 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