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과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이 식어 버렸다. 이제는 4년 동안 함께 해온 사회복지담당자라는 수식어가 듣기 싫어졌다. 단순히 사랑의 권태기에 빠진 연인의 나른함이 아니다. 이건 영화 <미저리> 여자 주인공이 내 몸을 더듬는 수준의 소름이며, 심리적 거부 반응이다. 막상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잊고 있었던 불안감과 우울함은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고 나는 또 갈등하게 된다. 아침 5시에 눈을 떠서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만큼의 내적 갈등에서 패배하면 출근도 하지 못한다. 시청에서는 평판이 깎일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팀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부적응자로 낙인찍혔다. 수액을 맞듯 누군가의 상담과 치료로 간신히 버티는 사람이 또 누군가의 상담을 하면서 타들어가는 평정심은 이미 바닥을 보였다. 나는 이 굴레를 벗어나 쉬고 싶었다. 몇 개월 전부터 휴직을 생각했다.
공무원이 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며, 돈도 포기하며, 주위의 평판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휴직만을 생각하며 뛰쳐나가고 싶어 졌다. 결혼이라도 해서 아이라도 있다면 내가 먼저 육아 휴직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 노총각이며, 당장 결혼을 할 만큼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동기들은 승진을 이야기했다. 8급이 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버티라 했다.
그 순간부터는 누군가 휴직을 했다는 소식에 민감해졌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이 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딱 봐도 의욕 없는 썩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었다.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마우스 클릭 수만큼 한숨 나왔다. 그 순간 옆자리 짝꿍은 걱정스럽게 날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그만둘 것 같은 나를 보는 주변 시선에서 불안감이 느껴졌다. 좋지 못한 시선이 감지되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나를 비난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괴로워졌다. 한동안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하지 않았다. 식욕도 없거니와, 혼자 밥을 먹는 게 편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하나를 먹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사무실은 가기 싫어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걱정을 해주는 주변의 충고도 안 들렸다. 그 모든 것이 비난하는 것으로 들리며, 무능한 나에게 비수를 꽂는 팩폭일 뿐 도움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무실을 들어가면 괜히 내가 힘들어서 털어낸 업무로 힘들어하는 직원 눈치가 보였다. 어디 하나 야물게 하지 못한 나 때문에 고생하는 누군가가 보이는 것도 고역이다. 이쯤 되면 휴직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걱정해주는 동기들이 아니었다면, 당장 휴직 아니면 퇴사할 이 일을 이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나는 그렇게 휴직을 결심했다. 적절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무작정 출근하기 싫은 휴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