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습관 덕분에 점심을 먹으면 될 것을 배가 허전하다는 신호가 왔다. 날이 흐려서 그럤나? 딱히 안 먹어도 되겠다 싶어서 참았다가 점심을 먹자 싶었다.
그렇게 평소처럼 주차를 위해서 공설시장을 들어갔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국숫집에 주인이 토란을 다듬는 것을 보고는 식사가 되는지 묻고는 비빔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정말 지나는 순간에 아무런 생각 없이 들어간 것이라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말했다.
"곱빼기로 주세요."
"그냥 양을 좀 많이 드리면 되죠?"
배가 고프지 않다고 불과 한 시간 전에 생각했는데, 곱빼기를 주문하는 모습이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밀가루 가격이 올랐다고 요즘은 양을 더 달라는 것은 민폐 손님인 것 같아서 돈을 더 지불하겠다는 뜻인데, 시장 인심은 아직 물가의 한계치를 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인심 덕분에 나의 무의식이 살짝 존중받은 느낌이었다.
포장마차에 볼 법한 빨간 동그리 테이블에 앉아서 나만을 위한 비빔국수를 기다렸다. 보통 국수 전문점에 가면 보일 커다란 통이나 쌓여 있는 국수봉지는 없다. 시장에 지나는 손님들을 위해서 그때 만드는 국수 양념과 국물을 손수 만드는 중이다. 우리네 집에서 먹던 집국수 맛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이것저것 반찬을 주신다는 것을 나는 거추장스럽다며 반찬도 거절했다. 국수를 김치에 놓고 먹으면 좋지만, 몇 번의 젓가락질로 끝나고 후루룩 마실 국물에 설거지가 늘어나는 것은 그날따라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대접받는 식당이 아니라, 그냥 지나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의 주방에서 뚝딱이는 소리와 잠시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서야 국수와 국물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고추장이 맵다고 말을 해주었는데, 잘 읽은 김치가 올라간 매콤한 국수가 나왔다. 아마 집국수였다면 달달한 설탕도 들어가서 좋았을 것 같지만, 김치의 맛과 매운 고추장의 맛이 신선한 맛이었다. 게다가 그걸 중화시키는 국물은 한층 맛을 더 감칠맛 나게 했다. 얼얼 거리는 혓바닥을 다시금 한 젓가락 들어가는 국수로 그리고 국물은 한 모금 마시면서 몇 분 안 되는 먹방을 찍었다. 한마디로 어머니가 뚝딱 해주신 비빔국수 맛이었다.
카드도 아닌 오천 원짜리 하나 주머니에서 꺼내서 드린 손으로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을 보니 푸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주차를 위해서 들어올 때도 하늘은 이랬던 것 같았다. 역시 배가 부르니 좋은 것이 보이는 것이 애매한 상황에서는 배가 부른 것이 최고인 것 같다. 지나다가 맛있게 먹은 국수에서 행복을 느끼는 소소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