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돈이 없을 때. 시중에서 파는 육개장 국거리에 칼국수 면을 사다가 넣어서 먹었다. 이른바 내가 만든 육개장 칼국수였다. 맛이 있느냐는 주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참 맛있게 먹었다. 애초에 육개장이라는 국은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해장도 만능인 음식이었다.
전날 술독에 빠져서 속이 쓰라린 사람이나 긴 여행의 여독에 속이 니글거리는 사람에게 효과 직방인 칼칼한 음식에 정말 칼국수 면을 넣은 것은 반칙이다. 아마도 라면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걸쭉한 국물이 되는 칼국수 면발은 조금은 넉넉한 대접도 필요히지만, 먹는 타이밍도 중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포항에서 만난 육개장 칼국수는 무척이나 반가운 음식이었다. 정말 집에서 대충 만들어 먹었던 음식을 제대로 만난 것이니까. 제대로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 사실 육개장은 만나긴 쉬워도 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면과 함께 만나기는 어려웠다.
바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본다. 진하게 올라온 육수에 칼칼한 맛이 느껴졌다. 전날 먹은 소주의 기운이 사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파와 고기 건더기를 함께 먹으면서 씹는 맛도 즐겨봤다. 역시나 육개장이다.
하이라이트는 탱글한 칼국수 면발을 흡입하면서이다. 라면보다는 확실한 묵직함이다. 아마 보통 라면이었으면 불었을 것이다. 칼국수이기에 뜨거움을 식혀가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서 매운 향으로 땀이 흘렀다.
넉넉한 사발은 내용물의 열기를 가득 담았고, 먹으면서 올라오는 맵기에 평소보다 흐르는 땀을 멈추기 힘들었다. 역시나 기분 좋은 땀이다. 그리고 멈출 수 없는 맛이다. 그렇게 나는 그 큰 그릇을 다 비웠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아침 산책하고, 해장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한 세트라면 이만한 식도락은 더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포항은 얼큰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