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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y 05. 2024

비오고 허리 아파도 먹었던 수제비

남원 용남시장 <달님분식>에서 수제비 먹방 찍다

  "사람이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 병이 난다."


  이 말에 할머니는 나에게 수제비를 해주시곤 했다.


  감기가 심해서 땀을 흘릴 때나?


  어머니한테 혼나서 우울할 때나?


  생각해 보니 어린이날에도 먹었다.


  그리고 비도 오면.

 

  그것도 아니면 그냥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삐져 있을 때도 할머니는 뼈마디만 보이는 약한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해놓고, 냉장고에 반죽을 넣어 두시고는 점심쯤 멸치 육수에 감자 숭숭 썰어 넣고, 밭에 있는 대파며 고추를 썰어서 휘휘 저어 가면서 그렇게 한 사발을 담아 주시고는 적으면 냄비에 남은 것까지 리필해 주셨다. 마치 선물처럼.


  살다 보니 손맛이라는 것을 느낀다. 맨날 먹어서 잘 몰랐던 집밥도 그렇지만, 가끔 집에서 해 먹던 별미들도 이제는 혼자 살다 보니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난 아프면 수제비를 먹는다. 한도는 내 월급 이상 쓸 수 있는 카드로 차를 타고 맛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맛볼 수 없는 수제비는 정말 병가를 내고 아플 때 10시부터 2시까지만 빤짝 문을 여는 시장 골목에 있는 <달님분식>을 찾는다.


  여기 메뉴는 사실 수제비도 좋지만, 팥칼국수인데 나는 유일하게 먹지 않는 종류였다. 그래서 유독 손님 중에는 내가 제일 젊다. 노인이나 중년 이상의 아는 사람만 온다는 이곳에서 조심스럽게 수제비를 시켜 놓고는 셀프인 물 한 컵을 떠다 놓고 기다렸다.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하시는 사장님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젊은 손님에게 궁금할 법도 한데, 무심하게 제법 양이 많은 수제비를 테이블에 놓고는 김치랑 모자라면 말하라고 하시고는 들어가셨다. 단무지와 김치. 수제비와 어울릴까 싶지만, 한참 열기를 담고 나온 수제비에 차가운 단무지는 위급한 상황에 도움이 많이 된다.

  따로 접시를 담지 않고, 김치를 담아 온 접시에 뜨거운 수제비를 몇 개 올려놓고 김치 한 조각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여러 번 떠가면서 약간 익은 김치의 맛과 국물을 함께 먹으면 또 다른 맛도 느낄 수 있다. 같이 건져 올라온 감자는 살짝 쪼개고 으깨서 먹고, 적당히 식은 수제비를 본격적으로 먹다 보면 땀이 절로 났다.


  수제비에 참 다양한 것을 넣어서 파는 여러 식당을 다녔다. 아마 수제비라면 미식가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렇지만 5,000원 수제비에 감동하는 것은 추억을 담아서 그랬을까? 잠깐만 여는 이 수제비 가게에 조심스럽게 찾고, 만족했다.

  허리 수술 후에 누워서 많은 것을 떠올렸지만, 딱 여기서 파는 수제비가 생각났다. 나만 누워 있는 원룸에는 밀가루도 없고, 고추가 없다. 대파는 지난겨울에 썰어 놓은 것이 있지만, 멸치도 없었다. 게다가 그 맛을 내줄 할머니는 진작에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결국에 내가 갈 곳은 정해졌다. 거동이 가능해진 틈에 난 연일 점심을 수제비를 먹었다. 남들은 질릴 것 같다고 했으나, 난 솔직히 아쉽다. 당연하게 먹을 수 있었던 수제비는 할머니 수제비는 고등학교 이후에는 추억이 되었고, 이 가게도 사라지면 또 하나의 아쉬움이 될 테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더 먹어 둬야 했다.

  배부르게 수제비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잠시 1분간 멍하니 있다가 나가는 길에 카드가 아닌 요즘은 보기 힘든 현찰을 드리고는 문 밖을 나섰다. 그리고 혼자 수제비를 먹어 보려고 시도했지만,


  '역시나 원조를 따라가긴 힘들다'는 생각에 할머니 표 어린이날 선물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역시나 나는 그때 두 번째 리필을 떠서 먹었어야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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