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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Sep 22. 2024

족발에는 떡볶이지

서울 공덕 <마포 왕족발>에서 족발을 먹다

  <무한도전>을 너무 좋아했던 나. 서울 공덕에 전집을 가려고 종종 다. '정총무가 쏜다'를 너무 맛나게 봐서 비가 오면 전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덕은 전보다는 족발이 유명했던 곳이었다. 때도 왜 이렇게 허름한 족발집이 많은지가 궁금했다. 다만 나는 당시에는 묵직한 고기보다는 기름 튀겨진 고소한 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이 흘러서 뜬금없이 족발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식이나 모임. 아니면 집에서 배달이나 시켜 먹었던 족발이지만, 정말 맛집에서 먹어보자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어려운 서울 일정에 틈을 내서 공덕을 찾았다.

  역시 가지 마자 선택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많은 족발집이 골목과 골목을 구성하고 있었다. 나름 블로그의 평을 세심하게 찾아서 갔는데, 공교롭게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더위에 빙글빙글 골목만 돌다가 이른 시간에 족발을 먹는 커플이 있던 <마포왕족발>에 들어갔다.


  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와중이라 낮술을 마실 작정이었다. 그렇게 반반 족발을 주문하고 나니 주방과 홀에 이모가 분주해졌다. 상추에 쌈장에 깍두기에 순대.  이유는 모르지만 떡볶이도 나왔는데, 함께 나온 순댓국은 메뉴가 나오기 전에 술 안주용 같았다.

  덕분에 순대 하나 맛소금을 찍어서 한 입, 내장을 하나 쌈장에 찍어서 한 입, 국물 한 수저 떠먹고는 한 잔을 마셨다. 이렇게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먹부림을 부려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시동이 걸린 소주 릴레이는 멈추기 어려웠다.

  그렇게 다음 소주를 부를 쯤에 메뉴가 나왔는데, 윤기가 반지르르한 게 먹기 전에도 부드러워 보였다. 그리고 매콤과 일반을 번갈아 가면서 먹다가 쌈장 대신 떡볶이 소스에도 함께 먹어보니 느끼함도 잡아주는 것이 새로운 조합이었다.

  아마 과거에 나도 이 맛을 알았다면, 종종 왔을 것 같은 풍성한 상차림이었다. 먹는 와중에도 옆에는 노신사 네 분이 오셔서 메뉴를 시켜 놓고는 소주를 마셨고, 전혀 순댓국은 안 먹을 것 같은 젊은 여자 두 분은 순대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워가고 있었다.

  소주를 한 병 비우고는 더위에 찌고 있는 도로에서 과거에 찾았던 전집을 돌아보니, 시간이 흘러도 유명한 것은 그대로라는 것을 느끼며, <무한도전>이 생각났다.

  <무한도전>을 즐겨보던 20대에서 30대로 살았던 나는 이제 40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족발에 떡볶이가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 인생은 오래된 족발집 간판처럼 길게 살고 볼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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